국내여행/경상북도

[경주여행]무덤2기가 호리병처럼 붙어있는 신기한 경주역사유적지구 황남대총(98호 고분)

워크뷰 2012. 3. 30. 05:00

 

 

신라왕 왕비와 함께 잠들다
그 역사의 현장인 황남대총을 둘러 보겠습니다

이 곳도 총이란 명칭을 사용한것으로 보아 정확한 왕의 이름을 모르기 때문인것 같습니다

산수유가 피었습니다^^





황남대총사적기
이 곳은 찬란한 신라문화의 보배들이 가득히 묻혀있는 역사깊은 능역이다
천 수백년 오랜세월에 봉분은 허물고 푸초우거진 묘에 어지러운 민가가 들어서서
이름마저 잃어버린 폐허의 터가 되었었다


이에 미족문화의 자주적 연구와 자랑찬 유산의 알뜰한 보존을 위하여
황남대총의 발굴조사가 1973년 7월 부터  1975년 10월 까지 2년 3개월에 걸쳐
실시되었다


출토된 유물은 황금보관을 위시하여 5만여점에 이르렀고
천년신라의 영화로운 문화를 세계만방에 다시 한번 선양한 크나 큰
성과를 이룩하였다


1976년 5월 봉분을 원형대로 복원하면서 목곽자리에 석곽을 만들어
출토된 유골을 안치하고 발굴기록을 돌에 새겨 묻었다


이 사업은 번영하는 조국의 우렁찬 기상아래 영광된 민족문화의
계발에 이바지한 역사적 사업이라 이일을 돌에 새겨 여기 세운다

1976년 10월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 세움

 

근처에는 잔잔한 반영이 비치는 연못이 하나 있습니다!

황남대총은 동서 80m, 남북 120m, 남분높이 23m, 북분높이 22m의 호리병 모양으로
북분 남분이 연결되어 있는 적석목곽분 2기가 붙은 쌍문입니다
남분은 남자 북분은 여자의 묘인데
남분이 먼저 축조되고 후에 북분이 죽조되었습니다


황남대총 북분출토 금관 및 허리띠

금제고배

터키석이 박힌 금팔찌

황남대총 북분출토
새머리모양 유리병

손잡이 부분에 금실로 감았는데
아마 깨어져 수리한듯 보입니다
당시 신라에는 유리생산기술이 없었고
당연히 금보다 더 귀한게 유리였습니다
이 유리병은 로마에서 수입한것입니다


황남대총 남분출토
금반지


유리잔

이러한 유물들은
5세기경 신라가 중국 일본외에도 중앙아시아를 통해
서방과 교류를 확실히 했음을 보여줍니다

5~6세기 국제교류가 왕성하였던 시절
 이 무덤의 주인공 신라왕은 과연 누구였을까요?

대릉원의 담장의 디자인이 정감이 갑니다^^

 

경주 대릉원을 이제 나갑니다

다음 목적지는 노동리와 노서리고분군으로 향합니다

곧 이곳 포스팅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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