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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여행/남전교회]3.1 독립만세운동과 4.4 익산 솜리 독립만세운동의 진원지

워크뷰 2013. 1. 6. 05:00

 

 [익산여행/남전교회]3.1 독립만세운동과 4.4 익산 솜리 독립만세운동의 진원지

전라북도 익산에 위치한 남전교회는 익산 최초로 1897년 설립이 되었으며

1919년 3.1운동(4.4 익산 솜리 독립만세운동)의 진원지 입니다

4.4 익산 솜리 독립만세운동의 현장에서 일본경찰의 칼에  현장에서 순국한

문용기 열사,박영문 열사,장경춘 열사,박도현 열사를 낳은 교회입니다

 

애국지사 김인전 목사,박연세 목사의 모교회인 남전교회는 6.25 전쟁의 시련을 고스란히 겪은 교회이며,

1970년대 기독교 인권운동의 중심에 섰던 교회,

1980년대 반부패 운동에 당당하게 나섰던 교회입니다

   

남전교회의 시작

 

전킨(전위렴선교사)가 타고 온 빅토리아호

미국 남장로회 소속 선교사로 입국한 전킨선교사(한국명 전위렴)는 1893년 9월 육로를 이용해 전주를 답사한 후

서울로 올라갔으며 1894년 레미놀즈선교사(한국명 이눌서)는 해로를 이용해 군산에 도착 전주로 들어 갔습니다

 

 

개신교 선교 초기 당시 사진

이렇게 선교사들은 오고 가는길과 장터에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1897년 익산에 사는 몇명이 복음을 들었으며

이들중 7명이 복음을 받아들여 기독교로 개종을 합니다

 

 

전킨(전위렴)선교사의 집

그 7명은 이름이 전해져오고 있지 않지만 주일을 지키기 위해

50리나 멀리 떨어진 군산의 전킨선교사 집으로 예배를 보러 이동하였습니다

 

 

남전교회 4번째 예배당

익산에서는 이윤국의 집에 모였던게 전북 익산시 오산면 남전리 남전교회의 시작입니다

 

오산면사무소 광장에 있는 문용기열사 충혼비

 

남전교회는 익산지역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습니다

1919년 4월 4일 남전교회 최대진목사를 비롯 김만순 김필례 장경춘

군산 영명학교 교사 문용기(문정관으로도 불림)와 학생 박영문 박도현 등은 솜리 장날 대대적인 만세시위를 벌렸습니다

 

흰두루마리를 입은 시위대는 솜리장터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습니다

일제헌병대가 긴급출동하였으며 시위를 강제 진압하며 문용기의 오른팔을 칼로 내리쳤습니다

그러나 문용기열사는 왼팔로 독립만세를 외쳤고 일본경찰은 왼팔도 칼로 내리쳤으며

땅에 뒹굴면서까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 일본경찰의 칼에 현장에서 순국하였습니다

이때 박영문 장경춘 등이 현장에서 함께 희생되었습니다 

 

 

 

문용기열사

독립운동가 이며 전북 익산 출생으로서 1919년 3.1 독립운동을 맞아

이리 역전에서 개최한 익산군민대회에서 연설을 통하여 만세시위에 나설것을 호소하던 중

일본경찰의 칼에 찔려 순국하였습니다

 

 

문용기열사 혈의(천안 독립기념관 소장)

이후 1977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습니다

 

순국열사비

1919년 3월 1일 온 겨레가 부른 대한민국 독립만세는 한일합방에 항거하는 통렬한 민족의 함성이었다

이해 4월 4일 익산시에서는 문용기 박영문 장경춘 박도현 서정만을 중심으로 이곳 장터에 모인 수천명의 군중앞에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며 지휘하던 중 무자비한 왜적의 총칼아래 장렬히 순국한다

이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자 1949년 4월 29일 익산시민일동의 명의 이 비를 건립하였다

 

남전교회 교인들의 4.4 만세운동은 후에 이승만대통령이 높이 평가하여 친필로 순국선열비문을 하사하였습니다

그러다 6.25전쟁중 이 비석을 넘어뜨리고 李承晩書(이승만서) 라고 새긴 부분을

깨뜨려 없앨려고 한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미래를 향하여 나아가는 남전교회

새롭게 건축한 남전교회의 모습입니다

 

 

 

 

 

 

교회앞마당에 순교비가 보입니다

 

 

순교비남전교회 박병호선생

 

순교자 남전 박병호선생

순교자 남전 박병호선생은 1909년 7월 27일 익산시 오산면 남참마을에서 남전교회 제 8대 박다연장로와 백다복집사의

3남4녀중 장남으로 태어나셨다 1919년 4.4 솜리독립만세 당시 순국한 박영문열사가 그의 큰 매형이며

1970년 8월 1일 새벽제단을 쌓다가 소천하신 남전교회 제 10대 박병준 장로는 그의 동생이시다

박병호 선생은 평소 학문에 대한 집년과 불의에 굽히지 않는 의협심이 강한 성품으로 1945년 8월 15일 해방직후

조국의 혼란기에 사회질서 유지롸 올바른 국가관 확립을 위해 오산면 애국청년단(80명)을 인솔하고

대한독립청년단을 조직하여 청년운동을 전개하셨고,

한반도를 미,영,중,소 4개국의 신탁통치하에 둔다는 신탁통치안을 을 반대하는 반탁운동과 반공운동에 앞장서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정부수립에  크게 기여하셨다

선생은 대한청년단 오산면 단장겸 익산군 부단장을 역임하고 면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아 오산면장에 취임하여 면민의 복리증진에 진력하셨다

순교자 박병호선생은 부모님과 함께 섬기던 남전교회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던중

교회의 목사관이 없는것을 심히 안타깝게 여기고

교회옆 북참마을에 위치한 적산가옥을 교회에 귀도록 노력하여 마침내 그뜻을 이루셨

1950년 6.25전쟁 당시 남전교회 교인이며 대한청년단 오산면 단장 겸 익산군 부단장과 오산면장으로 활동하고 있던

박병호선생을 인민군은 최우선 처형대상 으로 지목하였고 결국 토착 좌익세력들이 박병호션생을 체포하여

그를 치안대의 거점이었던 북참마을 창고에 감금하고 심하게 고문하였고

1950년 8월 2일 인민군에 의하여 익산시 영동동 소라산으로 끌려가 순교하셨다

박병호션생은 마지막으로 대한민만세를 외치며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후 순교하셨으니 향년 41세이였

이에 남전교회는 교회와 조국과 겨레를 위하여 활동하시다가 순교하신

박병호선생의 숭고한 정신을 세세토록 충혼하고자

온 성도들이 한 마음으로 그 거룩한 뜻을 새겨 순교비를 세우노니

남전교회의 뿌리깊은 전통적 믿음과 애국의 얼이 세세무궁토록 이어가리라

주후 2012년 8월 2일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유적교회

남전교회 성도일동

 

 

 

 

 

젊은 청년들이 도시로 빠져 나가고 이제는 시골의 교회는 어르신들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이에 발맞추어 남전교회도 이제는 어르신사역으로 촛점을 맞춥니다

바로 남전노인복지센터를 건립하여 지역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남전교회 가는길

시내버스로 남전에서 내립니다

 

남전교회 이정표를 따라 가시면 됩니다

 

 

 전북 익산시 오산면 남전리 618-1

063)841-2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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