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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공단(宋公壇)" 동래읍성지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11호

워크뷰 2010. 8. 31. 07:38
동래부동헌을 뒤로하고 송공단으로 향합니다
드디어 송공단에 도착을 하였습니다^^


"송공단(宋公壇)" 동래읍성지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11호
◈ 지정일 : 1972년 6월 26일
◈ 소재지 : 부산시 동 래구 복천동 229-78번지 일원


1742년(영조 18)에 동래부사 김석일(金錫一)이
송상현이 순절한 정원루(靖遠樓) 유지에 단을 만들었다

송공단은 동·서·남·북 4단으로 되어 있다.

동단은 유생 문덕겸(文德謙),
비장(裨將) 송봉수(宋鳳壽)·김희수(金希壽), 청지기 신여로(申汝櫓),
서단은 노개방의 부인, 송상현의 첩 김첨(金蟾), 정발의 첩 애향(愛香),
남단은 향리 송백(宋伯), 동래부민 김상(金祥)과 두 촌녀 및 기타 무명 전망인,
북단은 송상현·
조영규(趙英珪)·노개방(盧盖邦)을 모시고, 매년 4월 15일 제사를 올렸다.

1760년(영조 36)에
부사맹(副司猛) 이정헌(李庭憲),
1766년에 다대첨사
윤흥신(尹興信), 유생 양조한(梁潮漢)이 추향되었다.
1765년 윤공단,
1766년 정공단이 세워짐에 따라,
다대포에서 순절한 분은 윤공단, 부산에서 순절한 이는 정공단에 배향되었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매년 순절날인 음력 4월 15일
동래기영회(東萊耆英會)에서 제사를 올리면서,
지금까지 관리하고 있다.
지금 동래시장 안에 있는 송공단은 부산광역시에서
1971∼1972년 대대적으로 정리한 것으로,
전면 입구에 외삼문·협문(夾門)이 있고,
재실 1동이 있으며 안에는 축단이 있다.

≪참고문헌≫ 東萊府誌
≪참고문헌≫ 忠烈祠志
≪참고문헌≫ 부산의 문화재(부산시, 1993)
≪참고문헌≫ 동래기영회 150년사(동래기영회, 1996)

원본출처-->클릭(네이트 백과사전)








외삼문이 잠겨 있기에 옆의 다른 출입문을 보니 조금 열려 있다
그 문은 이곳 관리인이 드나드는 문이다
허락을 받고 안으로 들어가서 오른쪽을 향하여 찍은 사진이다.





외삼문을 뒤로 하고 내삼문을 향하여 촬영함





외삼문과 내삼문사이에 있는 송공단 비석





송공단 비석 바로옆의 비석














내삼문을 향하여 걸어갑니다




내삼문의 동협문을 통하여 바로 보이는 송상현충절비



송공단 축단의 옜모습
원본출처(야후 지식2004-07-09 15:02 작성 )-->클릭





축단을 정면에서 바라 본 사진





축단을 오른쪽에서 바라 본 사진





축단을 뒷면에서 바라 본 사진





우측에 홀로 떨어져 있는 비




좌측으로 조금가면 도 다른 비석이 있다


재실 1동이 있다


문밖으로 다시 나오니 벽에 기대어 있는 잡동사니가 눈에 거슬린다

송공단의 기원은 농주산전망제단(弄珠山戰亡祭壇)인데
이 제단은 1608년(선조 41) 동래부사로 부임한 이안눌이
송상현 공의 기제사를 올리기 위해 동래읍성 남문 밖에 있던
조그마한 야산인 농주산(弄珠山 : 동래경찰서 자리)에 설치하였다가 
1742년(영조 18) 동래부사 김석일(金錫一)이 임진왜란 때
동래부사 송상현공이 순절한 정원루(靖遠樓)의 옛 터에 설치한 단(檀)으로서,
송상현공을 비롯하여 임란 당시 순절한 여러 선열 들을 모신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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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공단의 뒷모습

다음 위성사진으로 본 송공단
이 자리는 임진왜란때 송상현공이 왜군과 싸우다 전사한
정원루(靖遠樓)의 위치이기에
이 곳에 모셨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