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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여행 통영가볼만한곳 삼도수군통제영(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세병관

워크뷰 2015. 3. 3. 05:18

 

 통영여행 통영가볼만한곳 삼도수군통제영(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세병관


 

통영가볼만한곳에 삼도수군통제영이 있다 오늘날로 치면 해군샤령부에 해당하는곳이다.

진해군항제때 해군사령부를 일부 개방하여 방문하였을때 그 엄청난 규모를 보고 매우 놀랬었다.

그러한 장소인 삼도수군통제영을 오늘 찾아가는 것이다.

일제강점기때 많이 파괴되어 그렇게 넓었던 삼도수군통제영은 세병관 하나만 남겨놓고 일제가 다 헐어버렸다.

지금은 작은 규모이지만 통영시민들의 힘으로 복구가 이루어져 예전의 모습을 조금 찾아볼수 있게 된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망일루(세명문)

광해군 3년(1611년) 제10대 우치적 통제사가 세운 통제영의 종루(통행금지와 해제를 알리는 커다란 종이 있는 곳)로서,

화재이후 다시 복원하였지먄 훼파되어 2000년 10월 통영시에서 다시 복원하였다.


통영 삼도수군통제영은 1604년에 설치되어 1895년에 폐영될 때까지 전라 ·충청 ·경상의 3도 수군을 지휘하던 본부였다.  

임진왜란 때 제1대 수군통제사로 임명된 전라좌수사 이순신장군이 한산도에 설치했던 본부가 최초의 통제영이었으며,

충무공 이순신이 떠난 정유재란 이후 한산진영은 물론 전라좌수영마저 폐허가 되자 통제영은 전세에 따라 옮겨 다니는등 

한동안 제자리를 찾지 못하였다.

1604년 제6대 통제사 이경준이 부임한 뒤, 여러곳으로 옮겨다니던 통제영은 지금의 통영시 두룡포에 자리를 정한다.

제 209대 통제사 홍남주 까지, 무려 290년간 왜적에 대비하는 조선수군의 총본부로서 오늘날의 해군사령부와 같은 곳이다.

그러나 조선수군은 1895년 일제에 의해 강제로 해체됐고, 209대 홍남주 통제사를 끝으로 통제영은 끝났다.


▲수항루

수항루는 2층 누각이며 해안매립으로 1986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여 중건하였는데,

통영성 남문밖에 있었으며, 숙종 3년(1677년)에 임진왜란 승전을 기념하기 위하여 제 58대 윤천뢰 통제사가 건립하였다.

수항루는 봄, 가을 군점(수조)때에 모의 왜병으로부터 항복 받는 행사를 거행해 왔다.


입장료가 있는데 일반 3,000원 군경 및 청소년 2,000원 어린이 1,000원이다.


▲좌청

군관과 사병이 대기하던 건물로 대변좌청 이라고도 하며, 제54대 신여철 통제사가 1689년에 좌청과 우청으로 분청하였다.


▲산성청

통영성을 지키는 산성중군 등이 근무했던 곳으로, 숙종44년(1718년) 제83대 오중주 통제사때 건립하였으나 소실된것을 최근에 중건하였다.


▲지과문

"지과(止戈)- 창을 멈추다" 라는 뜻으로 두 글자를 합하면 굳셀 무(武)를 상징 전쟁이 없길 바라는 마음과 전쟁에 대비한다는 

이중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지과문을 통과하면 통제사가 제반 의전을 치르던 중심영역으로, 통제영 영역 내에서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이 곳을 통과하면 삼도수군통제영의 가장 핵심이 되는 장소가 있다.


▲세병관

국보 제305호| 2002.10.14.지정

세병관은 통제영의 객사로 제6대 통제사 이경준이 이곳에 통제영을 옮겨온 이듬해인 1605년에 처음 세웠는데,

17세기 초에 건립된 목조단층 건물로 정면 9칸, 측면 5칸의 9량 구조 단층 팔각집으로 경복궁 경회루(국보 제224호), 

여수 진남관(국보 제304호)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건물에 속한다.

세병관은 여수 진남관과 함께 그 역사성과 학술적 그리고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제35대 통제사 김응해가 1646년 규모를 크게하여 다시 지었으며, 제194대 통제사 채동건이 1872년에 다시 고쳐 지었다. 

장대석 기단, 50게의 민홀림기둥, 2익공 양식에 벽체나 창호도 없이 통칸으로 트여 있으며, 

질박하면서도 웅장한 위용이 통제영의 기상을 잘 나타내고 있다.

현판의 글씨는 제137대 통제사 서유대가 쓴 글씨이다.

건물은 전체적으로 우물마루(건축용어: 짧은 널빤지를 마루의 귀틀에 끼워서 '井'자 모양으로 만든 마루)에 

연등천장(건축용어: 삿갓 천장의 하나, 서까래 사이의 개판 또는 앙토 밑이 그대로 치장이 되게한 천장)을 시설한 것이나, 

안쪽의 중앙 3칸만은 45cm정도의 한단을 올려 궐폐를 모시는 전패단을 만들고 상부를 

소란반자(건축용어: 틀을 '井' 자 모양으로 짜고, 네모진 구명에 넓은 널빤지를 덮은 반자)로 꾸민 후 3면에 분합문을 두어 위계를 달리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어느 지역이나 중앙관이 파견되어 통치하는 곳에는 객사가 있는데,

매월 초하루와 보름날 임금에 대한 망궐례가 이루어지고 관의 행사와 손님맞이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행사가 이루어 지는것은 이곳 통영의 주권이 임금에게 있음을 알리는 행사이다.

세병관이란 이름은 당나라 시인 두보의 시 "세병마행(전쟁이 끝나 병기와 말을 씻는다)"에서 따왔다고 한다.

임진왜란의 오랜 세월을 겪은 후 평화를 갈망하던 백성들의 염원이 담겨있다.


▲세병관의 기둥중 가장 예쁜 물결모양을 하고 있는 기둥이다.


▲기삽석통

세병관 앞뜰에 영기와 장군기를 세우기 우해 깃대를 고정하는 두 개의 돌기둥.


▲잉번청

숙종 14년(1688년) 제66대 이세선 통제사가 건립,

통제영공방의 건물이나 물건등을 지키는 사람이 근무하던 곳.


▲12공방

제반 군기와 진상품을 생산하였던 곳으로, 백화당 서쪽에 자리하며, 조직적인 분업의 군영 공방체제를 갖춘곳.


▲야장방

쇠를 녹여 화살촉, 칼 등 병기 및 각종 철물을 주조하던 곳.



▲은방, 석방.

은방: 금과 은을 세공하여 각종 장신구 제품을 만들던 곳.

석방: 주석과 백동으로 각종 장석을 만들던 곳.


▲소목방

나무로 가구 및 문방구 등을 만들던 곳.


▲화원방

각종 지도 및 군사적 목적의 의장용 장식화를 그렸던 곳.



▲백화당

중국사신 등의 손님들을 맞이하는 통제사의 접견실이며,

통제영 장수들이 일상업무를 보고 숙소로 사용하던 공간으로 선조 36년(1603년) 제 6대 이경준 통제사가 세병관(국보 305호)과 함께 세웠다.

1775년 화재로 불탄 뒤 제132대 통제사 조완이 재건했으나 일제 강점기 때 철거됐다.

백화당은 복원대상 24채 가운데 가장 중요한 건물로 정면 7칸, 측면 5칸의 맞배지붕 형태이다.


▲통제사비군


▲내아군

통제사가 업무를 보던 영역이며, 중앙의 관아와 달리 지방의 관아에서는 

관리의 식구들이 살림하는 내아가 있어 공적공간과 사적공간이 공존하는 특징이 있는 곳이다. 


▲운주당

통제사가 통제영 군무를 보는 집무실


▲병고

통제영 병무를 관장하던곳으로 지금은 대포, 창 ,검 무기류를 전시하고 있다.


▲내아

통제사가 거처했던 곳으로 지방관청의 안채에 해당한다.

현재 안방, 대청, 건넛방, 부엌, 찬반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전소

조선시대 동전을 만들던 곳.

조선시대의 화페 상평통보가 벌견되었던 장소이다.


▲의두헌과 육의정

두개의 정자가 나란히 있는게 특징이다.


삼도수군통제영을 언덕위의 포토죤에서 바라 본 모습

가까운 곳은 12공방이며 가장 큰 건물이 세병관이다.

삼도수군통제영

경남 통영시 문화동 62

055) 645 - 3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