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성당

최양업신부의 난파체류지 신시도공원 새만금방조제

워크뷰 2015. 6. 1. 06:00


 군산지명의 유래가 된 신시도

신시도는 야미도, 선유도, 무녀도, 장자도 등등 10개의 유인도와 20개의 무인도로 구성된 

고군산군도에 가보면 바다 위에 무리지어 있는 섬들의 모습에서 

산이 무리지어 있다는 뜻의 군산(群山)이라는 지명이 생긴 이유를 자연스럽게 알 수 있습니다.


왜구의 침입이 잦았던 고려말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고군산군도의 주민들은 큰 고통을 겪었을 것입니다 .

이후 새로운 국가를 건설한 조선왕조는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태조 6 년 (1397 년 ) 에 

고군산군도에 수군 만호영이라는 수군기지를 설치했습니다 . 

그러나 왜구가 조선의 수군이 있는 고군산군도를 우회하여 금강 하구지역을 노략질하므로 

세종 때 고군산군도에 있던 수군기지를 진포변 ( 현 군산시 ) 으로 옮기게 됩니다 .

이때부터 고군산군도는 고군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 


고군산군도는 유인도 16개와 무인도 47개, 총 63개의 도서로 구성된 천혜의 관광지입니다. 

거리는 군산에서 45km지점에 위치하며 선유도를 중심으로 선유팔경, 해수욕장 등 천혜의 비경과 갯벌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신시도 새만금 방조제 기념탑 부지에 있는 최양업신부의 난파체류지 안내판 

최양업 신부는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학생이면서 김대건 신부에 이은 두번째 사제로 천주교계에서 평가되고 있는 분입니다.


1839년 박해가 일어나 3명의 선교사와 많은 조선인 신도가 살해되자, 

프랑스 해군성은 1846년 함대를 파견해 조선의 영의정에게 선교사 살해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는 서신을 전하였고, 

그 회답을 받고자 1847년 파견한 두척의 군함이 신시도에 좌초되었을 때, 

최신부는 프랑스 군인과 함께 상륙하여 통역을 맡았습니다.













신시광장

전북 군산시 옥도면 신시도리 산4-1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