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절

[전남 구례] 피아골 연곡사 그 안의 보물을 돌아보다

워크뷰 2010. 10. 9. 07:34



아침 일찍 붐비지 않을 시간에 지리산 피아골에 왔습니다


피아골의 버스시간표입니다
혼잡시에는 여기까지 올라오지 않고
아래 연곡사까지 운행한다고 하네요




지리산 연곡사의 안내표지판입니다








 연곡사 동부도 : 국보제53호
탑이 부처의 사리를 모시는 곳이라면,
부도는 유명했던 스님들의 사리를 두는 곳이다.
부도의 구성은 석탑과 같아서, 기단(基壇) 위에 사리를 모시는 탑신(塔身)을 두고
그 위에 머리장식을 얹는다.


이 부도는 연곡사의 동쪽에 네모난 바닥돌위로 세워져 있으며,
전체적으로 8각형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연곡사는 고려 전기까지 스님들이 선(禪)을 닦는 절로 이름이 높았는데,
 이 때문인지 이곳에는 이 부도 외에도 서부도(보물 제154호), 북부도(국보 제54호) 등
 2기가 더 있다. 동부도는 그 중 형태가 가장 아름답고 우아한 작품이다.


기단(基壇)은 세 층으로 아래받침돌,
가운데받침돌, 윗받침돌을 올렸다.
아래받침돌은 두 단인데, 구름에 휩싸인 용과 사자모양을 각각 조각해 놓았다.
가운데받침돌에는 둥근 테두리를 두르고,
부처님의 설법을 들으러 몰려든다는 8부중상(八部衆像)을 새겼다.
윗받침돌 역시 두 단으로 나뉘어 두 겹의 연꽃잎과 기둥모양을 세밀하게
 묘사해 두었는데, 이 부분에 둥근 테를 두르고
그 안에 불교의 낙원에 사는 극락조인 가릉빈가(伽陵頻迦)를 새겨둔 점이 독특하다.


탑신(塔身)은 몸돌의 각 면에 테두리를 두르고,
그 속에 향로와 불법을 수호하는 방위신인 4천왕상(四天王像)을 돋을새김해 두었는데,
그 수법이 그리 훌륭하지는 못하다.
지붕돌에는 서까래와 기와의 골을 새겼으며,
기와를 끝맺음할 때 두는 막새기와까지 표현할 정도로 수법이 정교하다.
머리장식으로는 날개를 활짝 편 봉황과 연꽃무늬를 새겨 아래위로 쌓아 놓았다.


도선국사의 부도라고 전해지고 있으나 확실한 것은 알 수가 없으며,
일제 때 동경대학으로 반출될 뻔한 위기도 있었지만 다행히도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기단이 좀 높아 보이기는 하나 전체적으로 안정된 비례감을 잃지 않으면서
훌륭한 조각수법을 보이고 있어
통일신라 후기를 대표할 만한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출처 문화재청-->클릭




동부도비에서 독특한 것은 거북 등에 표현된 날개입니다.




연곡사 동부도비 : 보물제153호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연곡사에는 승려의 사리를 모셔놓은 부도가 3개 있는데,
 이 비(碑)는 동부도 앞쪽에 서 있는 비로,
비몸돌이 없어진 채 받침돌과 머릿돌만이 남아 있다.


받침돌은 네 다리를 사방으로 쭉 뻗고 엎드린 용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사실성이 떨어지며, 잘려진 것을 복구해 놓아 부자연스럽다.
용의 등에는 새 날개 모양의 무늬를 조각해 놓아 새로운 느낌이다.
등 중앙에 비를 끼우도록 마련된 비좌(碑座)에는 구름무늬와 연꽃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머릿돌은 용무늬를 생략하고 구름무늬만을 새겼으며,
꼭대기에는 불꽃에 휩싸인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를 조각해 놓았다.


작고 아담해진 규모와 통념을 벗어난 조각형태를 지닌 고려시대의 비로,
통일신라시대와는 다른 새로운 양식을 보인다

출처 문화재청-->클릭






  연곡사 북부도 : 국보제54호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는 곳이 탑이라면,
수행이 높았던 스님의 사리를 두는 곳이 부도이다.
구성은 석탑과 비슷해서, 기단(基壇) 위에 사리를 모시는 탑신(塔身)을 두고
그 위에 머리 장식을 얹게 된다.
 이 부도는 연곡사 내의 북쪽 산 중턱에 네모나게 둔 바닥돌 위로 세워져 있으며,
전체적으로 8각형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연곡사는 고려 초까지 스님들이 선(禪)을 닦는 절로 이름이 높았는데,
이 때문인지 이 곳에는 북부도 외에도 연곡사 동부도(국보 제53호),
연곡사서부도(보물 제154호) 등이 더 모셔져 있다.


북부도는 그 중에서 가장 형태가 아름다운 동부도를 본떠 건립한 것으로 보이는데,
크기와 형태는 거의 같고, 단지 세부적인 꾸밈에서만 약간의 차이가 있다.
기단은 세 층으로 아래받침돌, 가운데받침돌, 윗받침돌을 올렸다.
아래받침돌은 2단으로, 아래에는 구름무늬를,
위에는 두 겹으로 된 16잎의 연꽃무늬를 각각 새겨두었다.
윗받침돌 역시 두 단으로 나누어 연꽃과 돌난간을 아래위로 꾸몄다.
특히 윗단에는 둥근 테를 두르고,
그 속에 불교의 낙원에 산다는 극락조인 가릉빈가(伽陵頻迦)를 돋을새김해 두었다.
 탑신의 몸돌은 각 면에 향로와 불법을 수호하는 방위신인
4천왕상(四天王像) 등을 꾸며놓았다.
지붕돌에는 서까래와 기와의 골을 새겼는데,
동부도와 마찬가지로 기와 끝에 막새기와의 모양을 새겨두었다.
머리장식으로는
날개를 활짝 편 네 마리의 봉황과 연꽃무늬를 새긴 돌이 온전하게 남아있다.
부도에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어떤 스님을 기리기 위한 것인지 알 수 없어
 ‘북부도’라고만 부르고 있다.


동부도가 통일신라시대 후기에 만들어진 반면에
북부도는 그 후인 고려 전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이며,
8각형 부도를 대표할 만한 훌륭한 작품이다.

출처 문회재청-->클릭




 연곡사 소요대사부도 : 보물제154호
연곡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연기조사가 창건하였으며,
고려 전기까지 선을 닦는 도량으로 이름이 높았던 사찰이다.
이 부도는 연곡사 서쪽에 있어서 ‘서부도’라고 하며,
소요대사의 사리를 모셔두고 있다.
승려의 사리를 두는 탑신(塔身)을 중심으로 그 아래에 기단(基壇)을 두고,
위로는 머리장식을 얹었으며, 각 부분이 8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단은 3단으로 나누어 각 단마다 연꽃무늬를 새겼으며,
그 위로 탑신을 받치도록 두툼한 괴임을 둔 점이 독특하다.
탑신의 몸돌은 한 면에만 문짝 모양을 새기고,
다른 곳에는 8부신중상(八部神衆像)을 돋을새김해 두었다.
지붕돌은 여덟 곳의 귀퉁이마다 큼지막하게 꽃장식을 얹어두었으며,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비교적 완전하게 남아 있다.

연곡사에는 이외에도 2기의 부도가 더 있는데,
그 부도들에 비해 조형성은 떨어지지만 각 부분의 비례가 아름다운 작품이다.
탑신에 새겨진 기록을 통하여 조선시대 효종 원년(1650)에 세웠음을 알 수 있다.










연곡사 현각선사탑비 : 보물제152호
연곡사에 있는 비(碑)로, 고려 전기의 승려 현각선사를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비몸돌이 없어져 현재는 받침돌과 머릿돌만 남아 있다.


비를 받치고 있는 돌거북은 부리부리한 두 눈과 큼직한 입이 웅장하며,
수염을 가진 용머리를 하고 있다.
등 중앙에 마련된 비를 꽂아두는 부분에는 안상(眼象)과 꽃조각이 새겨져 있다.
받침돌 위에 놓여 있는 비의 머릿돌에는 여러 마리의 용이 서로 얽힌 모습이
 조각되어 있는데, 긴밀하고 사실성이 두드러진다.
앞면의 가운데에는 탑이름이 새겨져 있어, 현각선사의 탑비임을 알수 있다.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이 비는 고려 경종 4년(979)에 만들어졌다. 
출처 문회재청-->클릭
 







연곡사 삼층석탑 : 보물제151호 
연곡사의 법당 남쪽에 서 있는 석탑으로,
3단의 기단(基壇) 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의 각 층에는 4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겨 두었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으며,
각 층의 몸돌에도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겼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각 층마다 4단이고 처마 밑은 수평이다.
또한 윗면에는 경쾌한 곡선이 흐르고, 네 귀퉁이에서의 치켜올림도 우아하다.


맨 윗기단이 매우 넓어졌으며,
이에 반하여 탑신부는 줄어든 느낌이 있지만,
맨 아래 기단부터 꼭대기에 이르기까지 체감비율도 온화하며
 안정감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탑이다.
탑에 사용된 돌의 구성양식 등으로 미루어보아 건립연대는 통일신라 후기로 짐작된다.


석탑의 3층 지붕돌은 밑으로 떨어져 있었는데 1967년 해체하여 수리할 때에 복원되었다. 이 때 윗층 기단 안에서 동조여래입상 1구가 발견되었다.
출처 문화재청-->클릭












 연곡사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인 화엄사의 말사이다.
545년(신라 진평왕 6)
연기조사가 창건했으며,
신라말부터 고려초에 이르기까지 선도량(禪道場)으로 유명했던 곳이다.
절의 이름은 연기조사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큰 연못에서
제비 한 마리가 날아가는 것을 보고 그 자리에 법당을 세운 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뒤 복원되었으나,
1910년 고광순이 의병을 거느리고 이곳에서 왜군과 싸우는 과정에서 다시 불타버렸다. 그뒤 곧 중건했으나 6·25전쟁 때 다시 폐사되었으며,
오랫동안 사찰 내의 분규와 불편한 교통사정으로 인해 재건되지 못하다가
 1965년 대웅전만 건립했다.
1981년 정부와 신도들의 지원을 받아서 구법당을 없애고
대신 그 자리에 앞면 5칸, 옆면 3칸의 대규모 대웅전을 신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에는 대웅전 뒤편에 있는 동부도(국보 제53호)를 비롯하여 북부도(국보 제54호)·
서부도(보물 제154호)·동부도비(보물 제153호)가 남아 있고,
이 절과 좀 떨어진 곳에
 3층석탑(보물 제151호)과 현각국사탑비(보물 제152호) 등이 있다.
1967년 3층석탑을 해체·수리할 때 하층기단에서
 동(銅)으로 만든 불입상 1구(동국대학교 박물관)가 발견되었다.

출처 다음 백과사전-->클릭


오늘 아침엔 연곡사에 잠시 들렸습니다

아 배가 고프네요
아침 먹으러 숙소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