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전라남도

김영랑 시인 만나러 가는 길 강진 탑동 벽화 마을

워크뷰 2017. 3. 2. 06:00

김영랑 시인 만나러 가는 길 강진 탑동 벽화 마을

 

 

김영랑(金永郞, 1903.1.16~1950.9.29)의 숨결을 느끼러 강진으로 여행을 떠나봅시다.

서울 휘문고등학교에 다니던 김영랑은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기 위하여 구두에 독립선언문을 감추고

고향인 강진으로 내려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거사 직전 발각되는 바람에 5개월 동안 감옥살이를 하게 됩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야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문학>(1934, 4)

 

모란꽃 그림은 집안에 부귀 운이 찾아오도록 기원하는 그림입니다.

모란의 꽃말은 부귀, 영화, 왕자의 품격, 행복한 결혼이랍니다.

중국에서는 부귀를 바라는 마음에서 예로부터 모란꽃을 많이 그렸다고 하여 부귀화라고 합니다

 

모란은 부귀화로 불렸기에 일반 서민에게는 가격이 너무 비싸 근접할 수 없는 꽃이었습니다.

왕후 귀족이나 부호들 사이에서나 주고받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모란은 병풍의 그림으로 그려져 혼례식장 치장용으로 사용되었는데 그것도 귀하여 한마을에 공동으로 한 점씩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강진 탑동 벽화 마을에 가면 김영랑시인의 모란을 느낄 수가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