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전라남도

장성 여행 필암서원 김인후를 주향하고 그의 제자이자 사위인 양자징을 배향한 서원

워크뷰 2018. 8. 30. 23:30

장성 여행 필암서원 김인후를 주향하고 그의 제자이자 사위인 양자징을 배향한 서원


장성여행에서 오늘 찾아간 곳은 필암서원이다.

필암서원은 김인후를 주향하고 그의 제자이자 사위인 양자징을 배향한 서원이다. 


주차장에서 필암서원 입구로 걸어들어가면 제일 먼저 만나는 연못과 정자

연못의 물은 현재 말라있는데 연못에 물이 가득차 있다면 아주 멋있을것 같다.


필암서원의 입구 홍살문에서 바라보았다.

필암서원은 김인후의 문인 변성온 등이 주도하여 기산리에 서원을 세웠는데, 

1590년(선조 23) 김인후의 고향마을인 기산 아래에 창건되었다가 병화로 없어진 것을1624년(인조 2)에 복원했다. 


하마석이 있다.

이것은 서원에 들어가기 전 말에서 내릴때 받착지가 편리하게 만들기 위해서 가져다 놓은것이다.


1662년(현종 3)에는 ‘필암서원’이라는 사액을 받았다. 

1672년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고 1786년에는 양자징을 추가 배향하였다. 

대원군의 서원철폐시 훼철되지 않은 47개 서원중의 하나이다. 일제시대나 6.25사변 때에도 피해를 면하였다


확연루

이 서원의 문루인 확연루는 정면 3칸, 측면 3칸, 팔작기와집으로 영조 연간에 두 번 중·개수되었다.

그리고  문루의 편액은 송시열의 글씨이다.

낮은 장대석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워 주두·첨차·소로(접시받침)·쇠서(소의 혀 모양으로 된 장식)로 결구한 

이익공식을 이루고 있다. 처마는 겹처마이고, 후면 양측 추녀의 사래를 활주로 받치고 있다.

 

 

청절당

정면 5칸, 측면 3칸, 총 15칸의 단층 팔작집이다. 

‘청절당’ 편액은 송준길, ‘필암서원’ 편액은 윤붕구가 썼다. 

청절당의 좌우에 정면 1칸, 측면 3칸의 온돌방을 하나씩 둔 것으로 보아, 

본래 이 건물은 진원현의 객사였던 것을 1672년에 옮겨 온 것이라는 기록을 입증하고 있다.


이 청절당은 장대석으로 마무리한 낮은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민흘림 두리기둥을 세웠는데, 

기둥 위에는 주두를 놓고 쇠서 하나를 내어 초익공식으로 꾸몄다.

 가구는 오량으로 대들보를 앞뒤의 평주 위에 걸고, 판대공으로 종도리를 받친 일반적인 가구수법을 이루고 있다. 

처마는 홑처마이며,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동재 진덕재

동재는 서원에서 공부하던 원생들이 생활하며 잠을 잤던 동쪽에 위치한 건물이다.

진덕재 현판은 송준길 선생이 썼다.


서재

서측의 숭의재와 동측의 진덕재는 영조와 고종 때 중·개수된 것으로 서원의 동·서재를 이루고 있다.

 

경장각

서재 옆으로 3칸의 경장각이 있다. 

인종의 어필묵죽을 소장하고 있으며, 액호는 정조의 어필이다. 


우동사 문이 잠겨 있어 안으로 들어가 보진 못하였다.

4칸 반의 사우이다. 북벽에는 김인후를 동벽에는 양자징을 향사하고 있다. 

1957년 이 사우를 우동사라 현액하였다.

전면 반 칸은 툇간으로 개방하였고 나머지는 통간으로 하였다. 

장대석은 바른층쌓기로 처리한 기단 위에 돌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웠는데, 전면 툇간의 초석은 단면이 팔각형인 장주형 초석을 이루고 있다. 

기둥 위에는 주두를 놓고 쇠서 두 개를 놓아 이익공식 구조로 되어 있으며, 

처마는 부연을 단 겹처마이고 맞배지붕의 양쪽 박공에는 풍판을 달았다.

 

장서각에는 전적을 수장하고 있으며 장판각에는 ≪하서산생문집≫의 목판649판(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15호)를 소장하고 있다.


필암서원 청정당 마루에서 바라본 마당의 모습은

지금도 마치 유생들이 어디선가 책을 읽고 있는듯한 느낌을 가지게 만드는 곳이다.

전남여행 장성으로 떠난다면 장성 필암서원을 한번 들려버기 바란다.


필암서원

전화번호 : 061-390-7225

전남 장성군 황룡면 필암리 3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