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도보 여행/역사길

부산에 있는 "고관입구" 지명의 유래는?

워크뷰 2011. 8. 22. 05:00
 




부산 두모포왜관(豆毛浦倭館)

왜관은 일본사절과 상인이 조선에 와서 외교와 무역을 하던 곳입니다.
당시 조선인이 일본으로 건너가 무역하는 것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일본인이 조선으로 건너와 무역을 하였습니다.
따라서 조선 정부는 포구를 지정하여 일본인의 거주와 상행위를 허용하였습니다.

 

  조선 전기에는 제포(진해 웅천), 부산포(부산 범일동), 염포(울산 염포동) 세곳에
왜관이 있었고 일본인과 조선인은 허가를 얻어 왜관에 출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조일전쟁으로 인해 이전의 왜관은 폐쇄되고 일본사절이 서울로 올라가
조선국왕을 알현하는 것도 금지되었습니다.
그 후 일본과 국교가 재개되면서 조선은 1607년(선조 40년) 부산에만
왜관을 두어 외교와 무역을 허락하였는데 이 때 세워진 것이 두모포왜관입니다.

 

  두모포왜관은 현재 동구 수정시장을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왜관의 동쪽은 바다에 접해있고 서,남,북쪽 경계에는 담을 쌓았으며,
왜관 동문 밖에는 좌천(佐川)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두모포왜관이 있던 주변을 고관
(古館) 또는 구관(舊館)이라고 부르는 데
이 이름은 1678년 (숙종4년)에 신축한 초량왜관을 신관이라고 부른데에서 유래한다.

 

  두모포왜관은 부지가 좁고, 선착장의 수심이 얕을 뿐 아니라
남풍을 직접 받아 각종 배가 정박하기에 부적합하니 이관해 달라는 일본측의 요청이 거듭되었고 부산진성 등 조선의 군사시설과 가까워 국가기밀이 누설될 위험도 많았습니다.

이에 이관 논의가 자주 나오다가 1678년 초량왜관이 개관되면서 두모포왜관은 폐쇄되었습니다.
그 후 신관인 초량 왜관에 대해 두모포 왜관을 고관·구관으로 불렀습니다.
그래서 고관 입구, 고관파출소 등 고관이란 지명은 지금도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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