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도보 여행/역사길 56

[하마정下馬停] 이곳을 지날때에는 모두 말에서 내려야 하는곳

하마비란 계급의 상하를 막론하고 그곳을 지나갈 때에는 "말에서 내려라"(下馬)라는 뜻을 새긴 네모난 돌기둥(비석) 이다. 이 고을에 하마비가 세워진것은 조선초 태종때 부터라고 하나. 직접 하마의 예를 실천하게 된 동기는 따로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구전 설화-1 고려 때 정문도 공 묘소가 화지산에 있었기 때문에 분묘(墳墓) 입구인 이 곳에서 경의를 표하고 가라는 하마비를 세우게 되었고 하마정(下馬停)이라고 하는 지명이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 구전 설화-2 조선 중종때 영의정 정광필[동래정씨]이 이곳 정문도 선조 묘소가 있는 화지산을 찾게 되었다. 이때 동래 부사가 마중을 가게 되었는데 .....이때 위세가 당당한 영의정 정광필이 근방에 자기 선조의 묘소[정문도]가 있는지라...이처럼 신성한곳에 말굽소리..

부산진의배롱나무(釜山鎭의배롱나무) 천연기념물 제168호

祖上의 遺訓기리는 목백일홍 부산 화지 공원에는 동래정씨(東萊鄭氏) 시조(始祖:鄭文道)묘가 있는데 그 앞에 두 그루의 큰 배롱나무가 자라고 있습니다. 이곳 배롱나무는 고려중엽 안일호장(安逸戶長:나이 70이 되어 퇴직한 호장/고려 때)을 지낸 정문도의 묘소를 들이고 심은 것으로 보아 수령을 900년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배롱나무들은 수령 900년으로 보아 큰 줄기가 굵을 만도 하지만 당초의 원줄기가 죽어 고목이 되고 그 주변에서 네 개의 새 줄기가 나와 가슴높이 줄기 60-90cm 정도이고 줄기 높이는 7.2m에 이릅니다. 꽃이 100일간 핀다 하여 백일홍 또는 목백일홍으로도 불리는데 화기가 길고 화사한 꽃을 수 없이 피워 정원수로 많이 심고 있습니다. 東萊鄭氏華池先山재실상무인 鄭光默씨는 "노목이라 다..

기장 죽성리 왜성

드림 촬영장을 지나서 조금 걷다보면 골목길과 죽성교회을 지나서 기장 왜성으로 올라가는길이보입니다 기장왜성은 일본성의 모습을 볼수 있는곳 입니다 임진왜란대 우리 백성을 강제 동원하여서 축조된것으로 민족의 아픔이 서려 있어서 헐어버리자라는 의견도 있지만 보존을 하여서 우리 후손에게 알려야 한다는 의견에 지금 보존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건축가들이 자주 이 곳을 방문을 한다고 합니다 주택 담벼락에 무언가 심상치 않게 보이는 물건이 하나의 담에 묻혀있다 우편함이 이색적인 주택들 왜성에서 바라본 죽성 일대 한 일가족이 기장왜성을 둘러 보고 있습니다 한국의 성과 일본의 성 축성방식의 차이점 이 성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장수인 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가 축성한 것으로, 임진왜란ㆍ정유재란 중 왜군이 조선ㆍ명나라 연합군..

고산 윤선도의 유배지, 죽성리 황학대 가는길

다음 로드뷰로 보기-->클릭 가서보면 실망합니다 도로확장공사에 의해서 학을 상징하는 날개는 사라져 버렸고 주변은 온갖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우선 기장의 청강4거리에서 버스에서 하차합니다 곧 죽성입구라는 마을버스 정류장이 보입니다 기장 보건소가 곧 나타나고요 건강한 소도 보입니다 신천이란 마을버스정류장입니다 정류장 뒤로 기장군청이 보입니다 마을로 들어가니 담장이 정답습니다 마을 빨래터가 보입니다 다시 큰길로 나와서 계속 걷습니다 얼마전 들렸던 남산봉수대의 다른 진입로가 보입니다 남산봉수대 게시글 볼가기-->적의 침략사실을 알려라! 부산 기장군 남산봉수대를 오르다 생선을 말리는 모습이 어촌임을 알려줍니다 저 멀리 기장해송이 보입니다 이 마을이름이 원죽이군요 돌담이 정겹습니다 하얀등대가 보입니다 작은..

2012년을 목표로 하는 기장읍성 정비복원현장을 둘러보다 남문지,장관청,회화나무 [2/2]

기장읍성 남문지 가장 활발하게 복원공사가 진행중인 남문지입니다 한 민가안의 담장은 성곽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저 큰 돌이 보이시죠 기장읍성 장관청(機張 將官廳) 문화재 제 47호 담장길을 다라 걷다보면 장관청 건물이 나옵니다 여기도 한참 철거공사가 이루지고 있네요 기장읍성 내에 위치하고 있는 기장 장관청은 당초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였으나, 지금은 정면 8칸, 측면 2칸으로 변형되었으며, 지붕은 팔작지붕이나 기와는 최근 누수를 막기 위해 시멘트 몰탈을 덮어서 지붕 윤곽만 드러난 상태이다. 기장 장관청은 조선후기 동남해안을 지키던 기장군 소속의 군관들이 사용하던 집무소이다. 17세기 후반에 건립된 후 몇 차례의 개․보수를 거쳐 오다가 최근에 크게 變改되었지만 주요 구조부재 등은 원형대로 남아 있..

2012년을 목표로 하는 기장읍성 정비복원현장을 둘러보다[동문지,북문지,서문지,형옥 1/2]

갑화양곡 기장땅 기장(機張)이란 명칭은 통일신라 경덕왕 16년(757)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계속 한자음으로 사용되고 있다. 기장이란 명칭을 사용하기 이전에는 권34, 잡지3 양주 동래군조에 갑화양곡(甲火良谷)에서 기장으로 개명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므로 갑화양곡이라 불리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기장은 권57, 지리2 양주조에 다른 이름으로 차성(車城)이라고도 기록되어 있으므로 차성이라고도 불리어졌음을 알 수 있다. 출처 달뫼 블로그-->클릭 기장읍성(부산시기념물 제40호, 機張邑城) 이미지 출처 펜저의 국방여행-->클릭 기장읍성 동문지 조금전 만나본곳이 기장공덕비군이었는데 이 곳이 바로 무너진 기장읍성의 동문지였다고 합니다 기장공덕비군을 중간에 두고 좌우에서 한참 복원 공사중입니다 공사중이라 출입통..

기장읍성에는 철로 만든 공덕비가 있다

기장향교를 나와서 기장읍성을 향하여 걸어갑니다 임진왜란이후 페허가 되어버린 기장읍성 성은 무너지고 없지만 그 흔적을 바라볼수는 있었습니다 육교를 지나 저를 제일 먼저 반기는것은 기장 공덕비군이었습니다 기장 공덕비군 (기장군) ( 機張 功德碑群 , Gijang gongdeokbigun ) 기장의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던 비석들을 한군데 모아 놓은곳입니다. (30여개의 비석이 있습니다) 다음 로드뷰로 바로보기-->클릭 이곳은 제가 처음으로 본 철로 만든 비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랜 세월이 흘렀음을 보여 주는 거북형상의 비석 기장 공덕비군( 機張 功德碑群) 소재지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동부리 285-7번지 기장공덕비군 36기의 비석은 기장읍 주변에 흩어져 있던 여러 비들을 모아 1972년 기장초등학교 앞으로 ..

기장향교(機張鄕校 ) 부산시지정 기념물 39호

기장을 돌아보면서 평소의 호기심이 발동을 합니다. 기장에도 문화유적이 많이 있을것인데 한번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하여 찾은곳이 기장향교입니다. 동래읍성처럼 성벽이 있을것이고, 그 주변엔 동헌과 장관청,객사, 동문,서문,남문등의 흔적이 있을것으로 생각이 듭니다. 이제 하나하나 기장을 밟아 볼것이며 향교를 향하여 먼저 출발합니다 대중교통으로 기장향교 가는 방법 해운대역에서 노선버스 39번을 타고 교리초등학교 앞에서 하차를 합니다. 요금은 교통카드로는 1,080원 현금으로 지불시에는 1,200원입니다. 교리초등학교에서 하차를 하면 전봇대에 이정표가 바로 보입니다. 기장의 유명한 맛집 흙시루의 간판도 함께 보이는 군요. 기장 흙시루 관련 포스트 보러가기 -->클릭 기장향교의 위치가 바로 맛집인 기..

적의 침략사실을 알려라! 부산 기장군 남산봉수대를 오르다

적의 침략사실을 알려라! 우리 조상들은 에부터 적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하여 많은 시설들을 설치하였는데 그중에 하나가 봉수대입니다! 봉수대는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로써 적의 침략을 상부에 보고 했었죠 그러면 비가오고 악천후일때는 어떻게 하였을까요? 그땐 봉수대를 담당하는군사가 마라톤을 하였답니다 다음 봉수대까지 그렇게 하여서 부산에서 발생한 왜적의 침입사실을 저 멀리 도성 한양임금님의 자리에 까지 보고를 하였던것입니다 오늘은 부산의 해운대 장산오르는 길목에 있는 간비오산봉수대로 부터 기장의 남산봉수대까지 햇불 신호를 주고 받았던 기장의 봉대산을 오릅니다 눈앞에 광안대교가 내려다 보이는 곳입니다 여기에서 오늘 오르고자 하는 가징의 남산봉수대(봉대산)로 바로 넘어갑니다 기장의 남산봉수대를 오르기 시작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