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도보 여행/역사길 56

부산시 동래중심에 자리한 역사관광지 ´동래읍성´ 마안산 정상의 "북장대"

네이버 항공사진으로 보기--->클릭 마안산 (馬鞍山) 2개의 종순형 산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래의 진산인 윤산에서 뻗어내린 동래의 주산이다. 주능선을 따라 동래읍성이 자리 잡고 있으며 산정일대는 이 고장의 사적공원인 마안산공원으로 조성되어 시민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마안산의 정상 북장대에 올라서면 발밑에 복천동 고분과 학소대가 내려다 보이고 저 멀리는 하마정까지 시야가 탁 트인다. 왼편으로는 안락, 명장동, 오른편에는 온천동에 둘러 쌓여있는 마안산은 가히 동래의 중심산이라 할 수 있다. 마안산이란 산의 모습이 말의 안장을 닮았다는데서 붙여진 이름으로, 동래구청 쪽에서 보면 두봉우리(왼쪽은 북장대, 오른쪽은 체육공원)가 솟아 있는 모습이 여자의 젖가슴 같기도 하다 하여 일명 “유방산”으로 불리웠다고 ..

65주년을 맞이하는 8,15광복과 동래읍성의 3,1운동기념탑

8,15광복절을 맞이하여 부산시 동래구 명장2동 마안산정상에 위치한 동래읍성 사적공원의 3,1운동기념탑을 떠올린다! 광복의 배경 8.15 광복직전 우리나라는 독립 운동 단체들을 한국 독립당으로 통합하여 지지 기반을 강화하는 한편 일본의 패망에 대비하여 조소항이 제창한 삼균주의(개인과 개인,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 간의 균등생활 = 완전 균등)채택하여 제정, 공포하였다. 또한 국내 외에서 독립 운동을 추진하던 민족 지도자들은 일제의 패망후에 민주 공화국을 수립한다는데 뜻을 같이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에 선전 포고를 하고 연합국과 함께 참전함으로써 국제적으로 한국의 독립을 보장받았다. 일본 동맹국인 이탈리아(1943.9.) 독일(1945.5.이 연합국에 항복하자 일본의 전력이 급경하게 약하되었고 ..

부산시 동래읍성지 인생문(東萊邑城址 人生門)

동래읍성지 인생문(東萊邑城址 人生門) 동래읍성지는 조선시대 동래부의 행정 중심부를 둘러 싸고 있든 읍성입니다. 충열사 뒷산에서 마안산을 거처 동래 향교 뒷산까지의 구릉 형식으로 쌓은 산성과 평지성의 장점을 두루갖춘 부산의 대표적인 성입니다 소재지 : 부산광역시 동래구 칠산동 332-1번지 동래읍성지는 (부산광역시지정기념물 제5호) 규모가 성곽의 둘레가 약 3.8km(17,291자)이고, 6개문과 4곳의 장대가 있습니다. 6개문 중 하나인 인생문(人生門)은 문루 1칸이고, 옹성 한 곳에 보루가 1칸의 시설로 일제강점기에 없어진 것을 2005년 복원한 것 입니다. 이문에 대한 재미난 전설은 임진왜란 당시 이 문을 통하여 피난간 백성들은 화를 면할수 았었다 하여 "사람을 살린 문" 이라 人生門으로 불리게 되었..

부산시 동래중심에 자리한 역사관광지 ´동래읍성´ 망월산의 "동장대"

관련기록으로 본 동래읍성의 유래 '고려사'에 의하면, 왜구의 침입 때문에 조정에서는 동래에 축성하였는데, 이때 이 성은 석축으로서 둘레가 3,090척(약900m), 높이 13척(약 4m)으로 우물이 6개나 있었다 한다. 현존 읍성의 성격을 갖춘 성곽의 형태는 여말 왜침에 대비한 읍성축조가 처음으로, 조선조에 이르러서야 한양 도성을 비롯해서 지방에 전란에 대비해 고을 주민을 수용할 수 있는 읍성 축조가 활발해졌다. 조선시대 중종조에 편찬되었던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에 ‘옛읍성이 해운포에 있으며 동남은 석축이고 서문은 토석인데 둘레가 4,130척이며, 지금은 퇴폐하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 설치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일찍이 읍성이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고려시대에도 읍성이 있었다는 것은 '고려사'병..

부산시 동래읍성지 군관청

충렬사의 중간즈음에 군관청과 동장대로 올라가는 길이 있습니다 휴계소 뒷편으로 올라서면 명상의 숲이 나타나고 입산통제판이 붙어 있는 감시초소앞을 지나게 됩니다 휴계소에서 시원한 팥빙수를 금방 처리하고 군관청으로 향합니다. 군관청:조선시대 관아인 동래부사청 건물 중의 하나로, 군관들이 군사일을 보던 곳이다 군관청 방향표지를 따라서 올라가기로 합니다 팥빙수 하나에 더위를 식히고 휴계소 뒷편 계단을 올라갑니다 담벼락을 따라 걷다보면 감시초소와 입산통제푯말이 보입니다. 초소를 지나먼서 나타나는 잘 정리되어 있는 포장도로,그리고 언덕길. 안내표지판이 보이는데, 오른쪽으로 가면 곧바로 군관청이 나타나고, 왼쪽으로 가면 산책공간이라하여 한바퀴 돌아서 군관청에 도착하게 됩니다. 군관청 앞의 정자 종 목 시도유형문화재 제..

충렬사 전사이가도난"戰死易 假道難"

지난주 청도읍성을 다녀오고나서 부산에도 동래읍성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부산에 살면서도 부산의 읍성을 가지 않는다면 이것 또한 부산시민의 본분이 아닐것 같아서 오늘부터 부산에 있는 읍성을 다녀보기로 하였답니다,그중에 처음으로 동래구 안락동에 위치한 충렬사를 찾았습니다. 충렬사는 1592(선조25)년 임진왜란때 부산 지방에서 왜적과 싸우다 순절한 호국선열들의 위패 89위를 모신 사당으로 선열들의 충효사상을 가꾸어온 호국정신의 요랑지로 성역화 되어있으며 1605년(선조38년) 동래부사 윤 훤이 임진왜란 때 순절한 송상현공을 봉사하기 위하여 동래읍성 남문안(동래 경찰서 자리)에 宋公祠를 건립하고 위패를 모셔 매년 제사를 지낸 것이 오늘날 충렬사의 시초가 되었다. 충렬사 홈페이지 바로가기-->클릭 임진왜란 원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