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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노서리 고분군에는스웨덴의 瑞田 서자와 금관의 봉이 합하여 지으신 이름 서봉총이 있다

국내여행/경상북도
노동리 고분군의 봉황대를 보고 난후에

노서리고분군으로 이동을 합니다 







경주 노서리 고분군
사적 제 39호
경상북도 경주시 노서동 112

이 곳 노서동 넓은 평지에는 크고 작은 고분 10여기가 있다
노동리의 봉황대고분과 더불어 그 규모에 있어서 쌍벽을 이루는 제 130호 고분을 비롯하여
1921년 우연히 금관이 출토되어 세상사람들을 놀라게한 금관총,
1926년 스웨덴의 황태자 구스타프 아돌프 6세가 발굴조사에 참여하여 금관이 출토된 서봉총
1946년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이름이 새겨진 청동그릇이 발견되어 신라고분에 대한 연대추정에 도움을 준 호우총
그 밖에 은룡총,쌍상총,마총등이 있다
이들 무덤중 대체로 봉분이 큰 것은 돌무지 덜넛무덤이고
작은것은 돌방무덤 과 구덩식 무덤이다
1984년 신라고분 정비 보존사업의 일환으로 민가를 철거하고 지금의 모습으로 정비하였다








서봉총 발굴현장의 아돌프 구스타프 6세 황태자 (전 스웨덴 국왕)
서봉총 발굴에 관한 이야기 하나
일제강점기인 1925년 경주역에서 기관차고를 짓는데
매립할 흙이 모자라자 일제는 신라의 고분의 봉분 흙과 자갈은 공사장에 보내고
유물은 유물대로 파보자는 심사로 이 고분들을 파헤치기 시작하였다
발굴책임자는 조선총독부 촉탁이던 고이즈미 였고 1926년 10월 드디어 목곽이 발견되었다
이때 일본에는 스웨덴의 아돌프 구스타프 6세(1882 ~ 1973)가
신혼여행차 황태자비 루이스 마운트배튼과 함께 머물고 있었다

 




일본은 구스타프가 고고학에 조예가 깊다는 것을 알고 구스타프에게
신라고분 발굴에 참가하기를 간청하였다
구스타프는 혼쾌하게 수락을 하고 10월 9일 관부 연락선을 타고 부산에 도착하였다
10월 10일 새벽 경주 토함산 일출과 불국사를 구경하고 경주박물관에서는
에밀레종의 웅장하고 장중한 종소리를 감상하였다

 




그는 10시에 노서리 발굴현장에 도착 발굴작업을 지켜보고 마지막 유물을 덮은
흙을 직접 걷어내었다
그러자 찬란한 1500년 전의 금관이 나타났던 것이다
그날 저녁 구스타프가 경주 최부자댁의 고풍스런 99칸 저택에 머물며
순 한국식 진수성찬을 대접받는 자리에서 일본 관리들은
이 고분의 명칭을 스웨덴(서전)을 지칭하는 서전총이라고 명명하자고 하였다

 




그러나 구스타프는 정색을 하면서
1천년 찬란한 신라의 왕실무덤을 모독할수 없다
왕관에 봉황새 문양이 있으니 봉황대로 하면 어떨까 하며 사양하였다
일본 관리들은 머쓱해서
그럼 서전의 서자와 봉황의 봉을 따서 서봉총으로 하겠습니다
해서 지금의 이름이 생긴것이다

 



서봉총은 1926년 발굴하였는데 금관총,금령총에 이어 세번째로 신라시대 금관이 발굴되었다
적석목곽분으로 금관을 비롯하여 금제장신구 유리제품 토기등 수많은 유물이 나왔다
스웨덴의 황태자 구스타브 아돌프 6세가 직접 금관을 드러냈다
서봉총이라는 이름은 스웨덴 곧 瑞田 의 "서" 자와 금관에 새겨진 "봉"자를 딴 것이다

 



서봉총 출토 금관(보물 제339호)



 

서봉총 금관의 봉황

 



일제는 봉분을 훼손하여 그곳에서 나온 흙과 자갈을

공사장의 자재로 사용하였다

그래서 신라의 많은 왕릉이 평지화 된게 많은데

독립이후에도 왕릉의 봉분을 다시 쌓지 않아 흉물스런 모습의

왕릉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모르고 그냥 지나쳐버린곳도 있을것입니다 

위성사진으로 봐야만 두개의 무덤이 있었다는것을 알수 있는 땅콩모양의 서봉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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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중부동 | 서봉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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