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도보 여행/역사길

"박차정(朴次貞) 의사 생가" 방문 동래읍성지 1차순례코스 마지막지점

워크뷰 2010. 9. 10. 07:00

 출처 : 부산시 문화관광 홈페이지

복천박물관과 복천고분군을 뒤로 하고 박차정의사 생가로 향합니다
다음지도 원본으로 보기-->클릭


동래고등학교 담벼락에 있는 안내판


타일가게 앞으로 가면 보이는 안내판












토요일 오후 방문히니 문이 잠겨 있다
몇일후 평일에 다시 방문하니 문이 열려있다














금정구 금정문화회관 옆 만남의광장에 동상이 세워져 있다고 한다




금정문화회관옆 만남의 광장에 설치된 동상






부모님 사진






생가에서 바라보이는 대문


생가 대문쪽에서 바라본 입구의 모습
 

 3.1절 동래 만세재현행사의 시가 행진에 앞서
동래고 앞에 위치한 박차정의사 생가에서는
 박차정의사의 복장을 한 진행요원과 학생들이 함께 모여
박차정의사의 얼을 되새기며
대한독립만세를 연호했습니다.


이미지출처(데미안)-->클릭
2년전 동래문화회관에서는 박차정의사에 대한 뮤지컬공연도 있었다!


 
박차정의사가 혼자 노래하는 부분입니다
윤동주의 서시에 곡을 붙였는데
호소력이 있습니다

출처(아코디언 초가삼간)-->킆픽



 

2010년 1월 8일에 밀양에 있는 독립투사 박차정여사의 묘를 찾아갔습니다.

 버스타고 기차타고 자전거타고, 현지인의 겔로퍼를 타고  걸어올라가 찾아뵈었습니다.
 현지인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데 스스로의 맘에 감히 이래도 되는가 싶더라구요.


글과 사진출처(전북사진동호회)-->클릭


현재 보여주는 박차정의사의 묘

마음이 아프다


 박차정은 1910년 박용한과 김맹련의 넷째로 출생하여
 박철애, 임철애, 임철산등의 가명을 사용하였다.
동래성결교회 교인이었던 박차정은 1925년 동래일신여학교 고등부에 다녔고
당시의 일신여학교는 부산지역 여성교육의 산실로 항일 여성운동을 선도한 구심체였다.

1939년 정열적으로 활동하던 박차정은 곤륜관 전투에서 입은 부상으로
 1944년 5월 27일 34세로 순사했다. 박차정의 유해는 남편 김원봉이 해방후 귀국할 때
가져와 남편의 고향인 경남 밀양 감전동에 안치되었다.
박차정은 민족해방운동의 공로에도 불구하고
남편 김원봉의 월북이란 죄명 때문에 오랫동안 평가받지 못하다가
광복 50주년이 되던 1995년 공적이 인정되어 건국훈장 독립장의 서훈을 받았다.
 유관순급의 훈장이라고 함.2005년에 생가가 복원되었고
 2006년 5월의 인물로 뽑혔다.
- 전화번호 : 051)556-0527, 550-4682


여기까지가 동래읍성 탐방로 1차 코스였습니다

지난번 2차코스와는 또 다른 길이며 또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