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5

강원도여행 홍천여행 홍천성당 국가등록문화재 제162호

강원도여행 홍천여행 홍천성당 국가등록 문화재 제162호 홍천성당의 진입로는 새롭게 포장이 되어 있어 아주 깔끔합니다. 아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 올라가 보는데요 걸음을 옮길수록 서서히 보이는 홍천성당의 모습은 신비롭게 여겨집니다. 교육관 앞 광장의 나무에도 단풍이 물들었습니다. 가을 모습을 하고 있는 홍천성당은 분위기를 타기에도 좋습니다. 이 길은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은 길인데요 예전에는 이 길로 올라가서 성당 건물로 들어간 것 같습니다. 양쪽에 나무가 받쳐주는 모습이라 기분이 좋아집니다. 홍천성당의 옆모습과 함께 종탑을 보니 석조건물의 아름다움을 다시 한번 더 느낄 수 있습니다. 본당으로 들어가는 길은 쉴만한 벤치가 놓여 있으며 코로나 19 감염예방을 위한 소독시설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아름다운 성당]공주 중동성당 ~ 공주 근대건축물

한국 천주교의 심장 공주 공주에는 천주교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순교 터를 6개나 가지고 있는데,1866년 병인박해 때 성 손자선(토마스)를 비롯한 1503명이 순교한 거룩한 땅입니다 공주의 순교 전통은 1801년 신유박해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내포의 사도"로 불리는 이존창(루도비코 곤자가)이 참수 처형을 당하였던 황새바위 순교성지, 교수 처형지 향옥 터(환옥), 공개 처형지인 장깃대 나루, 고문과 취조의 장소인 우진영 터와 최종 사형판결의 장소인 충청감영 터,6.25 한국 전쟁 때 총살 현장이던 120년 전통의 공주 중동성당이 있습니다. 이 순교 전통은 오늘에까지 이릅니다. 국고개 정면에 보이는 건물은 충남역사박물관 공주 중동성당은 국고개라 불리는 장소(충남역사박물관과 공주시 중동성당을 향해 완만한..

국내여행/성당 2014.03.12

[익산여행/고도리석불입상]두석불의 만남을 가로막았던 익산천 이제는 다리가 놓아져 매일 만날수 있는 남녀석불

[익산여행/고도리석불입상]두석불의 만남을 가로막았던 익산천 이제는 다리가 놓아져 매일 만날수 있는 남녀석불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고도리에 가면 두개의 석상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것을 보실수 있습니다 석상의 높이가 4.24m이며 보물 제46호로 지정 되어 있습니다 조선말 이곳 익산군수로 부임한 최종석이 쓰러져 있는 석상을 일으켜 세워 봉분위에 세웠다고 합니다 머리에는 사각형의 높은 관을 쓰고 그 위에는 한겹의 보개가 있습니다 몸통은 4각형 석주에 불과합니다 두 남녀불상이 만나지 못하게 익산천을 중심으로 떨어져 세워져 있음 이 불상에 얽힌 전설에 의하면 음력 12월 해일 자시에 두 상이 만나 일년동안의 회포를풀고 새벽 닭 우는 소리를 듣고 제자리로 돌아가는 남녀상이라는 풍수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고..

국내여행/절 2012.12.07

[순창여행-귀래정]설씨부인 신경준선생 유지와 신말주가 불사이군의 절의를 지킨곳

귀래정이란 신말주의 호입니다 신말주는 신숙주의 아우로서 정계에 이름을 남긴 인물입니다 먼저 신말주의 아내 설씨부인의 집으로 가보겠습니다 KBS한국의 재발견팀의 차량이 보입니다 설씨부인 신경준선생 유지를 뒤로하고 귀래정으로 발길을 향합니다 1984년 4월 1일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67호로 지정되었습니다 1456년 (세조 2) 신숙주의 아우 신말주가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을 내몰고 제 7대 왕위에 오르자 이에 불만을 품고 벼슬에서 물러나 순창으로 낙향 자신의 호를 딴 귀래정을 짓고 불사이군의 절의를 지키면서 은둔생활을 하던곳입니다 현재의 건물은 1974년 다시 세운것으로 정면 3칸 특면 2칸의 팔작지붕입니다 아래 손가락을 누르시면 글쓴이에게 큰 힘이 됩니다. 고맙습니다.

임진동래의총(壬辰東萊義塚) 시도기념물 제13호 (동래구)

임진왜란 때 왜의 대군을 맞아 동래부사 송상현과 함께 동래성을 지키다 순절한 군·관·민의 유해를 거두어 모신 묘소이다. 영조 7년(1731)에 동래부사 정언섭이 퇴폐한 동래읍성을 수축할 때 임진왜란의 격전지였던 옛 남문터에서 많은 전사자의 유골이 발견되어 삼성대 부근에 6개의 무덤을 만들어 안장하였다. 일제시대 말 토지개간으로 동래구 복천동 뒷산 영보단 부근에 이장하였다가, 1974년 현 위치인 금강공원으로 옮겨왔다. 성의 함락일인 음력 4월 15일에는 동래구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다. 현재 묘역에는 담장이 설치되어 있으며, 담장 밖에는 제사를 지낼 수 있는 건물과 비석이 세워져 있다. 1731년 동래부사 정인섭이 글을 쓴 이 비석은 앞면에는 ‘임진전망유해지총(壬辰戰亡遺骸之塚)’이 뒷면에는 유해지총의 내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