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문화재 3

옜,영가대본터를 가보고

예전에 영가대본터를 찾아갔다가 담벼락만 보고 왔는데 그 담벼락 안에 영가대터의 비석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시 가 보았습니다 전에 보지 못하였던 카페가 하나 들어섰네요^^ 영가대본터로 들어가는 골목길입니다 그런데 들어 오면 회색빛 담벼락만이 있습니다 어디에도 영가대본터란 안내가 없습니다 이때 마을주민이 나타나서 물어보니 이 사다리를 타고 구경은 할수 있다고 합니다 출입문은 잠겨있어서 들어갈수 없다고 합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보니 자그만 건물이 하나 보입니다 저곳이 영가대본터임을 알리는 비석을 모시고 있다는 누각입니다 이 녹색문이 영가대본터의 출입문이었네요 이곳을 관할하는 동구청 관계자분께서는 이곳에 표지판 하나 부착하여 주시면 안될까요? 이 곳까지 왔다가 동네주민을 만나지 못하였다면 또다시 회색담벼락..

영가대(永嘉臺) 조선통신사의 출항지

영가대(永嘉臺) 조선통신사의 출항지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 자성대공원에 있습니다.. 영가대는 1614년 광해군때 경상도 순찰사 권반이 부산진지성 성밖서쪽 해안에 선착장을 축조하면서 퍼올린 토사가 쌓여 작은 언덕이 생겼고 이곳에 8칸의 정자를 짓고 나무를 심어 조성한 곳으로 누각의 이름은 1624년 인조때 선위사 이민구가 이곳에 파견되어 와서 권반의 고향인 안동의 옛 지명인 영가를 따서 영가대라 이름하였다함. 1617년 광해군 9년 통신사로 파견된 오윤겸이 처음 영가대에서 일본으로 출발한 이후 1811년 이후 순조때까지 통신사 일행이 출발하여 돌아오던 장소로 거친 대한 해협을 건거기전 안전 항해와 무사 귀환을 비는 해신제를 올리던 장소였으나, 1910년경 경부선 철도의 부설과 항만 매축 공사로 소실된지 9..

일제가 멋대로 옮겨 방치한 부산 문화재

일제 감정기때 부산 동래구 금강공원으로 멋대로 옮겨 방치한 부산 문화재로 조선시대 동래부 동헌의 망미루와 독진대아문, 동래읍성 남문에 있던 내주축성비, 온천천에 건립했던 이섭교비. 조선시대 관청이었던 동래부사청의 대문이다. 조선 인조 14년(1636)에 동래부 동헌인 충신당이 세워질 때 함께 지은 것으로 추정한다. 원래는 동래부사청 동헌의 입구에 있었으나20세기 초에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세웠다. 문 가운데에 ‘동래독진대아문(東萊獨鎭大衙門)’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는데, 이것은 효종 6년(1655) 동래부의 군사권이 경상좌병영의 지휘 아래 있던 경주진영에서 독립하였음을 뜻한다. 앞면 3칸·옆면 1칸인 3문 형식의 건물로, 사방이 개방되어 있고 문짝은 달려 있지 않다. 독진대아문은 규모는 작지만 흔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