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5

전남 장성여행 고경명 신도비

전남 장성 여행 고경명 신도비 임진왜란 때 담양에서 의병을 일으켜 충청도 금산에서 왜적과 싸우다 돌아가신 제봉 고경명(1533~1592) 선생의 생애와 업적을 새겨놓은 묘지 입구의 신도비입니다. 주변에는 여러대의 자동차를 주차할 수 있는 주차공간이 마현되어 있으며 근처에 잠시 쉴만한 정자도 마련되어 있어 장성에 오신다면 한번 들려보시는것도 좋습니다. 비석은 1800년대 초반에 세워졌으며, 거북이 모양의 좌대, 글이 새겨진 비신, 지붕 역할의 가첨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비문은 선생의 묘를 전남 화순군 흑토평에서 이곳으로 이장할 때인 1609년 윤근수가 지었고, 비문의 글씨는 윤봉, 비문 의의 전서는 윤천이 썼습니다. 고경명 선생은 광주광역시 남구 대촌동 압보촌 마을에서 태어났으며, 1558년 과거시험에서..

[칠전량해전공원/거제도여행]임진왜란 잊지말아야 할 우리의 역사

임진왜란이후로도 일본은 우리땅을 노리고 있다 지금도! 임진왜란은 토요토미히데요시가 분열과 전쟁이 거듭되던 전국시대의 일본을 통일한 후 막강해진 군사력을 바깥으로 돌려 자신의 위치를 굳건히 함과 동시에일찍부터 조선을 거쳐 대륙으로 진출하려는 과대망상을 품고 벌인 전쟁입니다 칠천량해전은 칠천도와 거제도 사이의 칠천량에서 조선수군이 일본군과 맞서 싸웠던 해전이며칠천량해전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수군이 유일하게 패배했던 해전이었으며조선백성들에게까지 큰 피해를 남겼습니다 그러나 조선 수군은 이 패전의 참혹한 상처를 딛고다시금 고삐를 당겨 잇다른 해전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결국 일본군을 한반도에서 몰아내었습니다 칠천량해전의 격전지이 일대는 음력 1597년 7월 16일 새벽 칠천량 해전이 벌어진 장소입니다일본군의 수륙협공..

부산도시철도 4호선 수안역사 내 동래읍성 임진왜란 역사관 개관

2011년 1월 28일 부산시 도시철도 4호선 수안역사 내에 동래읍성 임진왜란 역사관이 개관이 되었습니다 '420년의 역사를 뛰어넘어 임진왜란을 만난다' 도시철도는 아직 시험운행중이며 개통은 조만간 될것 같습니다 이 곳을 보는 순간 갑자기 숙연해 지더군요! 동래읍성 모형입니다 지금 램프가 점등 되어진곳은 동문,서문,남문,북문입니다. 이 곳은 액정 스크린을 통하여 가상체험을 할수 있게 만든곳입니다. 이 곳은 성을 둘러 싸고 있던 해자에 우리 군인과 일반백성의 시신을 매장한 곳입니다 해자:해자(垓子)란 적과 동물의 침입을 방어하기위해 고대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성의 주위를 파 경계로 삼은 구덩이를 말한다. 외호(外濠)라고 부르기도 한다. '조선왕조실록' 등 문헌 상으로만 존재를 알고 있다가 발굴 당시 관심을..

동래부동헌(東萊府東軒) 동래읍성지 부산시 지정 유형문화재 1호

동래부동헌의 지형적인 위치를 보면 그 규모가 클수 밖에 없는 이유가 보인다 임진왜란대 왜구가 부산진성과 다대성을 함락하고 동래읍성을 침락한것은 고지도를 보면 이해가 빠르다 이 고지도의 원본출처-->클릭 이 동래성안에 동래부동헌이 있다 동래도시철도역에서 출발하여 동래부 동헌에 도달합니다 동래부동헌(東萊府東軒) 이 건물은 조선시대에 동래부사가 공적인 업무를 보던 곳이다. 동헌은 일명 아헌(衙軒)이라고도 하며, 조선시대에 수령이 직접 공무를 처리하던 곳이다. 따라서 동헌은 관아 건물 가운데서 중심이 되는 건물이다. 동래부는 정3품 당상관인 부사가 재임하였는데, 관방으로서 대일 외교시 중시되었다. 때문에 관아의 규모도 다른 고을에 비하여 규모가 크고 격식도 높았다. 1636년(인조 14) 동래부사 정양필이 창건..

충렬사 전사이가도난"戰死易 假道難"

지난주 청도읍성을 다녀오고나서 부산에도 동래읍성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부산에 살면서도 부산의 읍성을 가지 않는다면 이것 또한 부산시민의 본분이 아닐것 같아서 오늘부터 부산에 있는 읍성을 다녀보기로 하였답니다,그중에 처음으로 동래구 안락동에 위치한 충렬사를 찾았습니다. 충렬사는 1592(선조25)년 임진왜란때 부산 지방에서 왜적과 싸우다 순절한 호국선열들의 위패 89위를 모신 사당으로 선열들의 충효사상을 가꾸어온 호국정신의 요랑지로 성역화 되어있으며 1605년(선조38년) 동래부사 윤 훤이 임진왜란 때 순절한 송상현공을 봉사하기 위하여 동래읍성 남문안(동래 경찰서 자리)에 宋公祠를 건립하고 위패를 모셔 매년 제사를 지낸 것이 오늘날 충렬사의 시초가 되었다. 충렬사 홈페이지 바로가기-->클릭 임진왜란 원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