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경상남도

[관천재]임진왜란때 아버지 아들 며느리가 충신 효자 열녀가 되어 김해 삼방동 지명의 유래가 되다

워크뷰 2013. 3. 30. 07:00

 

 관천재 재령이씨 사직공파 김해청년회

김해시내를 도보여행 하던중 만난 재실입니다

신어천 상류에 위치하고 있으며

삼방도의 마을이름의 유래가 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관천재는 1592년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여 일어난 임진왜란 당시에 의병으로 김해성을 지키다가

창의 순국하신 호조참판 휘 대형 공의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후손들이 건립한 재실이다

대형공의 자는 태래요 호는 관천이며 본관은 재령으로서 이조 명종 4년(1543년)에 나셨으며

선조25년(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적이 동래성을 함몰한 뒤 김해로 쳐들어 오자 공께서는

4월 17일 아들에게 이르기를 나는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칠것이니

너희들은 피난하여 선사를 끊이지 말라 하시고 장정 백여명을 모집하여 김해성에 들어가

송빈 김득기 유식공과 의병장으로 싸우셨으며 끝내 중과부적으로

4월 20일 향년 50세로 순국하셨다

공은 두두 사두 두 아들을 두셨는데 김해성의 함락소식을 듣고 장남인 우두께서 성에 들어가

아버지의 사채를 찾던 중 적과 마주쳐 살해당했으며  

또 공의 형이며 대윤공의 딸인 질녀는 교리 주박의 아들 익창에게 시집갔는데

왜적을 만나 절개를 지키기 어렵게 되자 물에 뛰어들어 스스로 죽음을 택함으로써 국난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일문에 살신충(나라를 위해 목숨을 버린)

살신효(어버이를 위해 목숨을 버린)

살신효(지아비를 위해 목숨을 버린)의 삼강이 배출되었다

선조 33년 8년간의 임진왜란 끝에 선조께서 이 사실을 아시고

충 효 열 이 세가지 꽃다운 후에를 기리기 위하여

판교동이라 부르던 옜지명 대신에 충신 효자 열녀가 났으니

세가지 꽃다운 일이라 하여 삼방이라는 이름을 하사하였으며

오늘날까지 그 이름과 정신을 이어가고 있습니

재령이씨 사직공파 김해청년회

-안내문 내용- 

 

 

 

 

경남 김해시 삼방동 581-4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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