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부동헌의 지형적인 위치를 보면 그 규모가 클수 밖에 없는 이유가 보인다
임진왜란대 왜구가 부산진성과 다대성을 함락하고 동래읍성을 침락한것은
고지도를 보면 이해가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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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래성안에 동래부동헌이 있다
동래도시철도역에서 출발하여 동래부 동헌에 도달합니다
동래부동헌(東萊府東軒) 이 건물은 조선시대에 동래부사가 공적인 업무를 보던 곳이다. 동헌은 일명 아헌(衙軒)이라고도 하며, 조선시대에 수령이 직접 공무를 처리하던 곳이다. 따라서 동헌은 관아 건물 가운데서 중심이 되는 건물이다. 동래부는 정3품 당상관인 부사가 재임하였는데, 관방으로서 대일 외교시 중시되었다. 때문에 관아의 규모도 다른 고을에 비하여 규모가 크고 격식도 높았다. 1636년(인조 14) 동래부사 정양필이 창건하였고, 1711년(숙종 36) 동래부사 이정신이 충신당(忠信堂)이라는 현판을 걸었다. 이후 조선말기까지 동래부와 동래관찰사의 아헌으로 사용되었다. 일제시대에는 동래군청 청사로, 1973년 동래군이 양산군으로 편입됨에 따라 양산군보건소 동부지소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상세벙보 문의 부산광역시 동래구 문화공보과 051-550-4085 출처 문화재청--:클릭 |
동래부동헌 외삼문
* 동래부동헌은 동래부사가 지역을 다스리고,
세금을 거두며, 죄를 지은 사람에게
벌을 주는 나라의 일을 처리하던 관청입니다.
입구의 왼편에 보면 관광안내지도가 들어있는 함을 볼수가 있다
이 안에는 두가지의 인쇄물이 있는데
하나는 8절지의 양면 안내판이고
다른 하나는 대형지도안내물이다
외삼문에서 바라본 충신당
외삼문의 여닫이문 축 의 모습
충신당(좌)과 동익당(우)의 모습
한쪽에 모여 있는 선정비들
동래부동헌의 옛모습을 1/120 로 축소하여 만든 모형
충신당 내부의 모습
충신당에서 바라본 외삼문의 모습
외삼문을 다시 나서면 왼편에 공중화장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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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부동헌
1636년 정양필이 창건한 건물로 부산에 남아있는 조선시대 단일건물중 규모가 가장크다.
부산의 진산으로 길지임을 알았던 일제에 의해 동헌주변에 강제로 가축시장을 형성하여민족의 얼을 말살하려고 시작된 동래시장이 현재는 재래시장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동헌이 왜 시장가운데 위치하고 있나하는 의구심은 풀렸으나 일본의 간교함을 재차 새기는 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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