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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제일교회 / 안성 기독교 여행 ] 1902년 설립 민족계몽 도운 실천신앙 안성제일장로교회

워크뷰 2014. 12. 5. 05:42

 

 [ 안성제일교회 / 안성 기독교 여행 ] 1902년 설립 민족계몽 도운 실천신앙 안성제일장로교회

 

안성 기독교 여행을 하면서 안성에서 1901년 설립된 죽산교회를 이어 1902년 두번째로 설립된 안성제일교회를 찾았다.

1902년 12월 안성제일교회는 민노아 선교사와 김흥경 조사가 경기 남부 지방을 순회 전도하던 중 임진오, 김완연 두 분의 신자를 얻어

안성군 읍내면 서리 313번지에 '안성읍 서리교회'를 설립한다.

1907년 구한말 결사대 사건으로 교회 지도자 임진오가 일제에 의해 처형된다.

(결사대사건: 고종 양위 반대를 위해 일어난 무장 항일운동)

이로인해 성도들은 사방으로 흩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부녀자 몇 사람은 믿음을 보존하고 있었으며, 초기 개심자 임진오 김완연의 신앙은 전경백 손흥집으로 이어졌고,

1912년 전경백 손흥집은 제2회 경총노회 정기회를 시점으로 다시 교회를 일으킨다. 

 

3.1 운동을 거치며 교회는 한글성서를 가르치는 야학과 실업직업교육을 실시한다.

농촌계몽 문맹퇴치운동을 벌이며 지역내 민족운동의 중심에 서게된다.

또한 음주, 아편, 축첩 등을 추방하는 정화운동을 펼치기도 하였다.

1943년 신사참배 등을 거부하다 이주원 목사가 투옥되고 교회는 강제해산 되기도 하였다

 

 

 안성시장을 걸으며,

 

 국립 한경대학교 정문을 지나,

 

 안성제일교회에 도착하다.

 

 한국교회 대부흥 100주년 기념교회 동판이 부착되어 있다.

현 건물은 2006년 7월 2일 준공예배를 드린 예배당이다.

 

 

 

 

 

<사진출처 :안성제일교회 80년사 http://blog.naver.com/bwh5722>

1902년 12월 초가 12칸 중 3칸을 빌려 예배처소로 사용하였다. 초기 10명으로 시작한 서리교회의 모습이다

1906년 집회장소가 12곳, 세례교인 89명, 원입교인 64명, 출석교인 500명으로 나타났다.

처음 믿은 10여명의 헌신적인 전도로 4년만에 많은 결실을 거두고 있었다.

1907년 구한말 결사대 사건으로 교회지도자 임진오가 일제의 의해 처형되고 성도들은 사방으로 흩어지고 만다.

 

 

 <사진출처 :안성제일교회 80년사 http://blog.naver.com/bwh5722/140200985716>

1912년 믿음을 잃지 않고 있던 몇몇에 의하여 교회는 다시 일으켜지며 지속되다가

6.25 전쟁으로 예배당을 잃었으며 1954년 벽돌건물로 예배당을 다시 세운다

 

 2006년 창립 100주년 기념교회 예배당으로 다시 일어세게 된다.

 

안성제일교회 옆으로는 금석천이 흐르고 있다

 

안성제일장로교회를 방문하면서

일제시대 항일운동과 민족계몽운동에 앞정선 초기 신앙인의 실천신앙에 고개가 숙여진다.

 

 

 

 

안성제일교회

경기도 안성시 석정동 328

031) 676 - 2607

http://www.asjc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