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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은 호국보훈의 달. 함안군 출신 호국영웅 김만술 대위, 진두태 중위.

국내여행/경상남도


 6월은 호국보훈의 달. 함안군 출신 호국영웅 김만술 대위, 진두태 중위.


2015년은 한국전쟁 65주년과 광복 70주년을 맞이하는 뜻깊은 해입니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이라는 암울한 역사의 시련을 딛고 오늘의 발전된 모습을 자랑하는 우리나라! 

이렇게 발전하게 된 기초 석은 수많은 호국영령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해마다 6월이 되면 함안군에서는 이분들을 기억합니다.

진두태 중위와 김만술 대위,


올 6월 국가보훈처와 우정사업본부에서 함안군에 기쁜 소식을 전하였습니다.

함안 출신 고 진두태 중위가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우정사업본부가 우표로 제작한 6·25전쟁 호국영웅 10인에 선정됐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함안우체국에 들러 호국영웅 10인의 희생을 기리는 우표 10종을 구하였습니다.

고 진두태 중위의 모습이 자랑스럽습니다.


이 기념우표는 6·25전쟁 당시 혁혁한 전공을 세운 국군과 국제연합(UN)군 참전용사 중에서 국가보훈처가 추천한 

국군 5명(육군 2, 해군 1, 공군 1, 해병대 1), 경찰 1명과 UN 참전군 4명(미국 2, 영국 1, 프랑스 1) 등 총 10인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 ‘6ㆍ25 전쟁 호국영웅 우표’.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심일, 김교수, 손원일, 이근석, 차일혁, 윌리엄 해밀턴 쇼,

 몽끌라드, 진두태, 칸, 밴플리트 순이며, 고 진두태 중위는 국군 중 해병대를 대표해 선정됐습니다. 



(이미지 출처 국가보훈처)

2013년 3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된 인물은 조국에 전부를 바친 스물네 살의 청년 ‘진두태 해병대 중위’입니다.

진두태 중위는 1927년 경남 함안군에서 출생해 1949년 4월 당시 병조장(원사)으로 해병대 창설에 참여했으며, 

6∙25전쟁 전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제주 4∙3사건’ 진압작전에 참가해 큰 공을 세운 인물입니다.


6∙25전쟁 발발 직후에는 군산지역에 상륙한 적과 교전 중 포로가 되었으나, 

미군의 공중폭격으로 적군이 어수선한 틈을 타 탈출에 성공한 이후 아군의 북진작전에 참가합니다. 

특히 원산상륙작전을 비롯한 고성∙함흥지구 전투에서 전공을 세웁니다.



이후 진두태 중위는 또 다른 전투를 위해 1951년 3월 정선군 여량리에서 평창군 대관령을 향해 허리까지 차는 눈길을 뚫고 진격합니다. 

당시 24번째 생일이 지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았던 진두태 중위는 1개 분대를 이끌고 적정을 살피며 전진하던 중 

적군의 탄피를 쫓아 적을 추격하던중 불행히도 매복하고 있던 적에게 포위되고 말았습니다.



진두태 중위는 이 위기에서 적의 공격을 한몸에 받으며 부하들을 먼저 안전하게 철수시킨 후 단독으로 적과 교전해 수명을 사살했지만, 

적의 총탄을 맞고 장렬히 전사했습니다.

1시간 후 전열을 가다듬은 아군이 다시 돌아 왔을 땐 그는 온몸이 벌집 상태가 되어 있었으며,

이 모습을 본 아군은 적군이 점령하고 있던 고지를 치열한 전투로 탈환하게 됩니다.

적과 교전 시 언제나 선두에서 적을 소탕해 생전에 ‘해병 중의 해병’으로 칭송 받았던 진두태 중위는 24살이라는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부하를 구하고 조국에 목숨을 바친 용감한 인물입니다.

전장에서의 혁혁한 전공과 살신성인의 정신을 실천한 진두태 중위의 고귀한 정신을 기려 

정부는 중위로 1계급 특진과 함께 충무무공훈장을 추서했습니다.


함안군 칠서면 이룡리 출신으로 서울 전쟁기념관에서 호국인물로

처음으로 선정된 1996년 3월 2일 기념행사를 시작으로 이후에 4번이나 선정되었습니다.


이에 창원보훈지청은 진두태 중위의 모교인 남지초등학교를 나라사랑실천학교로 선정했고 

진두태 중위의 이름을 딴 체육관 이름을 진두태관으로 명명 현판 제작, 자랑스러운 선배 호국영웅 배출학교 심벌 부착, 등을 통해 

진두태 중위를 알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국가보훈처)

2012년 5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된 인물

베티고지 전투의 영웅 육군대위 김만술(1931∼1991)

1947년 6월 육군에 입대하여 특무상사로 중화기중대에 근무하다가 현지 임관시험을 거쳐 소위로 임관하였으며, 

1953년 제1사단 제11연대 제7중대 제2소대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전쟁 중이라 소위로 임명된 그날 오후에 바로 작전에 참여하게 되는데,

1953년 7월 경기도 연천에 있는 베티고지(현 북한지역) 전투에서 소대장으로 중공군 2개 대대 규모의 병력(800명 정도)을 맞아 

13시간 동안 19차례의 공방전을 치른 끝에 고지를 지켜냈습니다. 적의 인해전술 앞에 1대 11로 열세한 병력을 지휘하여 

수류탄과 총검으로 백병전(白兵戰)을 벌였으며, 여러 차례에 걸친 공격으로 적의 절반을 숨지게 하고 격퇴했습니다.

당시 고인이 지휘한 소대원 34명 중 생존자는 12명뿐이었습니다. 

살아남은 12명의 소대원이 고지 위에서 헤아린 적의 전사자는 350명을 사살하고 450여 명을 부상시키는 전공을 세웠습니다. 

그는 미국 십자훈장에 이어 국군 최고의 영예인 금성태극무공훈장을 수여하였으며 2014년년 5월에 호국영웅으로 선정됐습니다.











보훈회관으로 가는 길의 KT담장에 예쁜 벽화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호국보훈의 달 6월을 맞이하여 함안 충의공원을 찾아가서,

한국전쟁 때 희생된 호국영령의 넋을 기리고, 순국선열의 숭고한 호국정신을 추모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뜻깊은 6월이 되기를 바랍니다.

함안충의공원

경남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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