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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 영덕의 인물 신돌석장군 잠수함으로 다시 태어나다

워크뷰 2017. 9. 29. 18:00

영덕의 인물 신돌석장군 잠수함으로 다시 태어나다


구한말 평민 의병장으로 항일운동을 펼쳤던 신돌석 장군

그는 무장투쟁으로 일본의 간담을 서늘케 한 인물이다.

그가 다시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행 2017년 태어났다.

이제는 육지뿐만 아니라 바다속을 지킬수 있는 무적잠수함으로 태어난 것이다.

그것도 무려 우리 해군의 1800톤급 최신예 잠수함으로 부활해 대한민국의 영해를 지키게 됐다. 

가슴이 벅차다, 그리고 너무나 기쁘다.


이번 신돌석 잠수함은 지난 8월 14일 제72주년 광복절을 맞아 평민 출신의 의병장 신돌석 장군의 애국심을 기리기 위해 

새로 건조 중인 214급 잠수함 9번함의 함명을 '신돌석함'으로 정했다고 밝혔다. 

해군에서는 항일 독립운동에 공헌하거나 국가위기 극복에 기여한 위인의 이름을 214급 잠수함의 함명으로 사용해 왔다.

지금까지는 손원일함, 정지 장군, 안중근함, 김좌진함, 윤봉길함, 유관순함, 홍범도함, 이범석함 등 항일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함명으로 제정했는데.

일제의 국권침탈 이전 무장 항일운동을 펼친 의병장의 이름을 함명으로 제정한 것은 이번 신돌석함이 처음이다.


그래서 신돌석장군 생가를 찾았다

신돌석 장군은 1878년 경북 영덕에서 태어났다.

을미사변 이듬해인 1896년 100여명의 의병을 이끌며 고향에서 치열하게 무장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된다.


이에 격분한 신돌석장군은 다시 의병을 일으켜 3천여 명의 병력을 지휘하며 일제에 맞서 싸웠다. 

특히 울진에서는 정박 중이던 일본군선 9척을 격침시켰으며, 

동해안을 비롯한 강원도와 경상북도 내륙지역에서 여러 차례 이뤄진 여러차례의 격전에서 승리한다.

신돌석장군의 승리는 일반 농민들의 항일 민족의식을 고취시켰으며 평민 의병장이 대거 등장하게 된 기폭제가 되었다.  


항일 무장투쟁에 앞장서서 ‘태백산 호랑이’라고 불리며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했던 신돌석 장군

그러나 어이없게됴 1908년 11월 18일 31세의 젊은 나이로 안타깝게 순국했다. 

1908년 겨울 대규모적인 일본군의 토벌작전에다 겨울이 다가오니 전력손실이 컸다.


이에 장군은 만주로 이동할 계획을 세우고 의병을 일시 해산한 후, 옛 동지를 만나러 다니다가 

영덕 지품면 눌곡에서 옛 부하이며 고종사촌인 김상력의 집에 머물게 되었다.

현상금에 눈이 어두웠던 그의 삼형제는 장군에게 술을 권해 취하게 한 뒤 도끼와 떡매로 장군을 살해했다

그때 장군의 나이 만 30세였다.

정부는 신 장군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고, 국가보훈처는 1998년 11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한 바 있다.


원래의 생가는 장군의 부친인 신석주가 1850년경 초가로 건립하였으나

1940년경 일본관헌들이 독립의지를 꺽기 위하여 불태워 소실되었다.

1942년에 기와집으로 다시 지었으며,

1995년 8월 19일에 현재의 초가집으로 복원되었다.


대청마루에 앉아 보았다

어디선가 신돌석장군의 숨소리가 들리는듯하다


방문을 열어보았으나

방은 비어 있다.


신돌석 장군 생가를 나서며

그의 이름으로 태어난 잠수함이 태어났다고 말하였다.


우물가에는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모습이 보이는듯 하다.


주차장과 화장실의 모습

이제 이곳으로 더 많은 여행객이 망문할것 같다.

신돌석장군 생가

전화번호 : 054-730-6298

경북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 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