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비란 계급의 상하를 막론하고 그곳을 지나갈 때에는 "말에서 내려라"(下馬)라는 뜻을 새긴 네모난 돌기둥(비석) 이다.
이 고을에 하마비가 세워진것은 조선초 태종때 부터라고 하나. 직접 하마의 예를 실천하게 된 동기는 따로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구전 설화-1
고려 때 정문도 공 묘소가 화지산에 있었기 때문에 분묘(墳墓) 입구인 이 곳에서 경의를 표하고 가라는 하마비를 세우게 되었고 하마정(下馬停)이라고 하는 지명이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
구전 설화-2
조선 중종때 영의정 정광필[동래정씨]이 이곳 정문도 선조 묘소가 있는 화지산을 찾게 되었다.
이때 동래 부사가 마중을 가게 되었는데 .....이때 위세가 당당한 영의정 정광필이 근방에 자기 선조의 묘소[정문도]가 있는지라...이처럼 신성한곳에 말굽소리가 요란해서 되겠는가 ? 모두 말에서 내려 조용히 예의를 가춰야 되지 않겠는가 ?라고 지시를 함으로서 실천이 되었다고 한다.
하마정에 얽힌 전설
임진왜란 당시 왜장이 하마정 앞을 말을 타고 지나려 하자 말이 갑자기 요동쳐 왜장이 말에서 떨어졌다. 다시 말을 타려하자 또 말이 요동쳤다. 통여관에게 왜 그러느냐고 물어보니 이 곳은 정문도 공 묘소가 있는 곳으로 누구든지 말에서 내려가야 한다고 설명했더니 왜장도 예의를 갖추고 말에서 내려 걸어갔다고 한다.
동래정씨 가훈
동래정씨는 그 유훈으로 내려오는 가훈도 남다르다.
동래정씨 가훈은 "남과 적을 삼지 않는다" 이다 . 조선시대 그토록 극심한 사화와 당쟁과 세도정치 속에서도 벼슬길이 끊기지 않은것은 그 가훈을 잘 지켰기 때문이었을까 ?
지금도 양정동 화지산 기슭에 사당 정묘사는 시민공원으로 개방하여 누구나 찾을 수 있으니 부러웁기 그지 없다.
원래 부산진구 양정동과 연제구 거제동 경계지역에는 하마비(下馬碑)가 아니라 하마정(下馬停)이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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