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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과정(鄭瓜亭)공원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 54호

워크뷰 2011. 2. 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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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곡(鄭瓜亭曲)이란 무엇인가?
우리말로 적혀 전하는 고려가요 가운데 유일하게 작자를 알 수 있는 작품으로, 우리나라 가사문학 연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충신연주지사' 및 '유배문학의 원류'라 할 수 있는 작품으로 고등학교 교과서에 올라있다.

정과정에 관한 기록을 살펴보면 정과정(鄭瓜亭)은 고려시대 문신인 정서(鄭敍)가 유배생활을 할 때 정자를 짓고 오이밭을 일구며 임금을 그리워하는 고려가요인 정과정곡(鄭瓜亭曲)을 지은 곳으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동래부지(東萊府誌)> 등에 의하면 과정(瓜亭)은 '동래부(東萊府) 남쪽 10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정자는 없으나 그 터는 남아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을 토대로 추정해 보면 정과정의 현재 위치는 수영강변을 따라 수영하수처리장에서 고려제강에 이르는 지역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 일대 대부분의 지역은 개발 등으로 인해 원 지형을 찾기 어려우며, 망미2동 산6-2번지 일원 약 1,240평 정도만이 원 지형을 간직한 녹지로 남아 있다.

 정과정(鄭瓜亭) 위치문제에 대한 논의가 비등한 이 때 정과정(鄭瓜亭)은 연산7동 전리(田里)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설이 대두하고 있어(제4장 정과정(鄭瓜亭) 옛터 참조) 정과정(鄭瓜亭)의 위치가 연산9동 수영강과 온천천이 합류되는 현재 경동산업 레미콘공장 가까운 곳이라는 설을 정면 반박하고 나섰다. 정과정(鄭瓜亭)은 금련산 골짜기에서 흐르는 쌍미천의 주변이었다는 주장이다. 이 정과정(鄭瓜亭) 위치문제는 연제구가 풀어야 할 과제이다. 연산7동은 산악지대답게 화정터와 무덤을 쓴 묘소가 있었던 곳이다.
출처-->연제구청 사료지









이 곳에는 경암(鏡巖, 용두곶)이라는 바위가 있고, 보호수 1그루와 1984년 토향회에서 건립한 정과정시비(鄭瓜亭詩碑)가 있는 등 자연경관이 수려한 곳이다. 과정은 이 곳을 중심으로 하여 '오옹건내'를 건너서 오이밭을 일구고, 또한 이 곳에서 망산(望山, 현 도시고속도로 건너 망미주공아파트가 들어서 있는 곳)에 올라가 임금이 계시는 개경(開京)을 바라보며 배산쪽을 향해 임금께 잔을 바쳤다 하여 배산(背山)을 '배산(盃山)'이라 하였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정 과 정 곡
정서(출전;악학궤범에서)

내 님믈 그리사와 우니나니(내 그대를 그리워 우니)

山 졉동새 난 비슷하요이다.(산 접동새와 난 비슷하구나)

아니시며 거츠르신 줄 아으(억울하며 거짓인 것을 아으!)

殘月曉星이 아라시리이다.(잔월효성이 아시니)

넉시라도 님은 한대 녀져라 아으(넋이라도 그대는 함께 있으나 아으!)

벼기시더니 뉘러시니잇가.(벼르시던 이 누구인가?)

과도 허물도 천만 없소이다.(과도 허물도 천만 없소이다.)

말힛마리신뎌(말들이 많아지니)

살읏븐뎌 아흐(살얼음판 같구나 아으!)

니미 나랄 하마 니자시니잇가(그대여 나를 벌써 잊으려고 하시는 구려)

아소 님하, 도람 드르샤 괴오쇼셔.(그대여 돌이켜 들었던 것을 거두어 주오.)


이 노래의 내용은 자기의 외로운 신세를 산접동새에 비기어 임금을 그리는 절절한 심정을 읊었으므로 '충신이 임금을 그리는 노래(忠臣戀主之詞)'라 하여 궁중음악으로 불렸다.

이 노래는 <동국통감>에는 <정과정>이라 하였고, <악학궤범>에는 <삼진작(三眞勺)>이란 이름으로 실렸는데 이 삼진작이란 이름은 정과정에 붙인 악곡명이고, 가사명은 아니다. 즉 <삼진작>은 가사에 붙인 곡조 이름이다. 일진작이 가장 느리고, 이진작보다 삼진작이 더 빠른 것으로 보인다.



 

정서(鄭敍)

정서(鄭敍)는 고려 인종때 문신으로 호는 과정(瓜亭), 벼슬은 내시낭중(內侍郎中)에 이르렀고 인종의 왕비인 공예태후(恭睿太后)의 여동생 남편 으로서 임금의 총애를 받았으며, 문장(文章)에 뛰어났다.

인종의 뒤를 이어 임금이 된 의종도 잘 받들어 섬겼으나 나쁜 신하의 모함에 빠져 의종 5년(1151년)에 동래로 유배되었다가 1170년(명종 즉위)에 풀려나와 다시 벼슬에 올랐다. 6년간 귀향살이를 하는 동안 지금의 수영강 부근에 집을 짓고 늘 거문고를 친구삼 아 임금님을 그리워하는 정을 담은 「정과정곡」이란 문장(가요)을 남겼다.

「정과정곡」이란 고려시대 정서(鄭敍)가 지은 고려가요의 하나로서 일명 삼진작(三眞勺)이라고도 하며 동래 유배생활중 에 임금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가사(歌詞)로 지어 불렀다는 10구체 향가 형식이다. 조선시대에는 이 가요가 궁중아악(宮中雅樂)으로 많이 불리었고 국문학상 가치가 높이 평가되고 있으며, 가사는 악학궤범 (樂學軌範)에 실려 전하고 있다. 정서(鄭敍)의 유배지인 정과정(鄭瓜亭) 옛터는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에 의하면 동래현 남쪽 10리 지점으로 현재 연 제구 연산9동 지역내 온천천과 수영강이 합류되는 지점이라는 설이 있다.
출처-연제구청 우리고장의 인물


















부착물 하나에도 정성이 깃들여져 있다

정과정(鄭瓜亭)은 고려 의종정서가 쓴 향가고려 가요이다.

특징
고려 가요 작품 중 작가가 밝혀진 유일한 작품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유배지로 귀양을 간 자신의 처지를 노래한 유배 문학 작품이다.10구체 형식이며, <악학궤범>에 실려 전한다.

지은이
정서는 인종의 총애를 받은 신하로 풍류(風流) 재예(才藝)에 뛰어난 사람이었다.그가 궁중을 중심으로 한 문관계 내직과 환관계 내료들의 정쟁(政爭)으로 발생한 대령후 사건으로 조정의 여러 사람으로부터 참소를 받게 되자 그의 고향인 동래(東萊)에 귀양가게 되었다. 그때 의종의 말이 오래지 않아 곧 부르겠다고 했는데도 오랫동안 아무 기별이 없자 이를 슬퍼하여 지어 불렀다고 한다.
출처-->위키백과

정과정곡은 우리말로 전하는 고려가요 중 작자를 알 수 있는 유일한 작품이다.
따라서 정과정곡이 지어진 유적지도 역사적·문화적으로 의미 있는 곳으로 인정받고 있다.
 
2003년 5월 2일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54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