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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보성여행 송재 서재필 생가 삼일운동 100주년 기념에 즈음하여 찾아보다

워크뷰 2019. 3. 6. 14:32

전남 보성여행 송재 서재필 생가 삼일운동 100주년 기념에 즈음하여 찾아보다


송재 서재필 생가를 찾았습니다.

주자장도 넓게 마련되어 있어 방문하기 편리합니다.


주차장에서 도보로 골목길을 걸어들어갑니다.

생가 주변엔 주차공간이 없으니 걷기를 추천합니다.


대문을 들어서면 보이는 고즈넉한 분위기의 

서재필 생가의 모습이 보입니다.


가은당의 정면에는 가은당 현판이 있으며 

측면에는 초당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가은당 현판


초당 현판


가은당의 모습입니다.


가은당 마루에서 바라본 대문방향의 모습입니다


마루에 앉으면 어릴적 서재필 선생의 마다에서 뛰어 노는 모습이 

상상될것 같습니다.




"초당 송재 서재필 선생은 1864년 1월 7일 이곳 초당에서 태어났다.

선생의 어머니는 커다란 황룡이 초당 옆 큰바위사이에 있던 뽕나무를 휘감으면서 승천하는 꿈을 꾸고서 태몽이라 직감하고

그 뽕나무 잎을 전부 따서 갈아 마시고 외지에 있던 부군 서광언공을 오시도록 하여 선생을 잉태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출생하여 7세까지의 유년기를 보낸 선생은 미국에서 생활하다 귀굴할 때마다 출생지인 초당의 현황을 자세히 묻고 그리워 하였다.

초당과 뽕나무는 6.25 전쟁때 소실되었으나 2003년 새로이 복원되었다."


본채와 사랑채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본채


서재


초당으로 들어가는 내문 

"송재 서재필 생가

독립운동가, 개혁가, 언론인으로서 만인의 추앙을 받고 있는 송재 서재필 선생은 1862년 1월 7일 외가인 이곳에서 

부친 달성서씨 광언공과 모친 성주이씨 사이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선생의 어머니는 행낭 터에서 자식을 낳아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 일념으로 4남 1녀를 이곳 친정에서 낳았는데 

선생이 태어나던 날 부친이 과거에 급제하니 경사가 겹쳤다하여 어려서는 선생의 이름을 쌍경이라 불렀다.

7세까지 성장하여 기초학문을 닦았던 이곳은 선생의 외증조부 이유원공이 터를 잡았으며, 

외조부 이기대공은 3천여 권의 장서를 구비하고 하은당,, 일감헌, 천상재의 3학당을 운영하였는데

유명한 학자들이 왕래하여 학문을 논한 곳이기도 하다."


"또한, 이기대, 이지용, 이교문, 이일 공의 장자로 이어진 연4대 문집이 있어 가천세고라는 책명으로 출간되었으며,

선생의 외종형인 이고문, 조카 이일? 부자간에 호남창의소 의진에 가담하여 군량을 조달하는 등 구국에 앞장서기도 하였다.

6.23전쟁 때 60여 호의 마을이 모두 소각되면서 선생이 출생한 생가도 소실되었으나 2003년 중요한 건물들을 복원하였다. "


초당을 정면으로 본 모습


초당 뒤의 굴뚝이 있는 풍경


문의 손잡이 윗부분에 막음장치를 통하여 집안을 볼 수 있도록 한게 재미있습니다.


서재필생가를 직접 방문하여 보니 그의 숨소리가 들리는듯 합니다.

대한독립만세 100주년을 기념하여 찾은 전남 보성 서재맆 생가

의미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송재서재필생가

전라남도 보성군 문덕면 용암리 982

061-852-21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