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5월 19일까지
장소 의령 의병박물관
제1부 특별기획 순회전을 기획하며
민족기록화는 우리 민족의 역사를 생생하게 기록하기 위하여 제작된 소중한 자료입니다.
광개토대왕의 영토확장이나 한산대첩과 같은 역사적 사건들은 문헌으로만 남아있고,
3.1운동이 시작되었던 탑골공원은 지금 찾아가도 당시의 우렁찬 함성을 느껴볼 수 없습니다.
민족기록화 제작 사업은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의 주도하에 권위 있는 사학자들의 면밀한 고증과 이름 있는 화가들의
화화사적 사명감에 의해 그려졌고,
이는 우리 역사의 중요한 자료로서 널리 쓰였습니다.
"그림으로 되살아난 민족혼" 은 이러한 민족기록화를 한자리에 모아 우리 민족의 불굴의 투쟁 정신을 재조명하려는
의도에서 기획되었습니다.
우리 민족을 지켜 온 중요한 순간들을 화백의 숨결이 깃든 기록화에서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제2부 겨레를 지켜온 불굴의 의지
광개토대왕의 영토 확장
이종상
5세기 초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대군을 거느리고 요하를 건너 후연의 숙군성을 향하여 진군하는 장면이다.
광개토대왕은 거란과 백제, 후연을 굴복시킨 데 이어 부여와 말갈을 정벌하여 영토를 크게 넓히고 고구려의 전성시대를
열었다(전쟁기념관 제공)
안시성싸움
박창돈
645년 당 태종이 연개소문의 정변을 구실 삼아 고구려에 쳐들어오자 양만춘 장군이 안시성에서 고구려군을 포위한
당나라 군대를 물리치는 장면이다.
고구려는 잘 훈련된 군대와 성곽을 이용한 견고한 방어체제로 수와 당의 끈질긴 침입을 물리칠 수 있었다.
안융진 담판을 하는 서희
이인영
993년 거란의 소손녕이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입하자 서희가 얀융진의 거란 진영에 들어가 소손녕과 담판하는
장면이다. 이 담판으로 고려는 송과의 관계를 끊는 대신 강동 6주를 회복하여 영토를 압록강까지 확대하게 되었다.
(전쟁기념관 자료제공)
삼별초의 대몽항쟁
김서봉
13세기 몽골의 침입으로 강화도로 천도했던 고려정부가 개경으로 환도하자 삼별초는 이를 반대하고 대몽항쟁을
계속하여 고려인의 자주정신을 보여주었다.
배중손이 지위하는 삼별초의 전투함들이 진도에서 여원연합군을 격퇴하는 장면이다.
한산대첩
김형구
1592년 왜군이 침략해오자 이순신 장군이 지휘하는 조선 수군이 한산 앞바다에서 격퇴하는 장면이다.
바다에서의 연이은 승리로 왜군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전라도 곡창지대를 지켜내어 왜군을
물리칠 수 있었다.(전쟁기념관 자료제공)
행주대첩
오승우
1593년 권율 장군이 행주산성을 포위한 왜군을 격퇴하는 장면이다.
부녀자들까지도 전쟁 준비를 도운 끝에 큰 승리를 거두었으며,
이로써 왜군의 침략을 물리치는 전환점이 되었다.
백마산성을 지킨 임경업
신영상
임경업 장군이 청군의 침입을 막기 위해 백마산성을 쌓고 민병대를 훈련시키는 장면이다.
1636년 청군이 침입해오자 백마산성에서 결사 항전하여 진로를 차단하였다(전쟁기념과 자료제공)
제3부 꺼지지 않는 항일투쟁의 불꽃
동학농민군 백산봉기
오승윤
1894년, 구부군 백산에서 전봉준이 수천 명의 동학교도들과 함께 4개조의 맹약을 맺고 궐기하는 장면이다.
이로부터 1년간 펼쳐진 동학농민운동은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막을 내렸으나 동학농민군은 뒤에 의병전쟁에 참전하여
항일투쟁의 전통을 이어갔다.
만민공동회 민중대회
최대섭
독립협회가 열강의 이권침탈에 대항하여 대한제국의 자주독립 수호와 자유민권 신장을 위하여 종로광장에서
만민공동회를 개최한 장면이다.
일반시민들도 참여한 만민공동회는 국민들 사이에 자주 독립의식을 확산시켰다.
민영환의 자결순국
손수광
1905년, 을사늑약에 항겨하여 자결 순국한 시종무관장 민영환을 그린 장면이다.
일제의 부당한 조약체결에 죽을으로 항거하여 국민들을 각성하고자 명함에 유서를 남기고 자결하였다.
홍주성 수복
장리석
을사늑약 이후 의병을 일으킨 의병대장 민종식이 왜군이 점거한 홍주성을 공격하여 되찾는 장면이다.
신식화기를 가진 일본군과 3일간이나 치열한 접전을 벌여 서울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를 차지하게 되었다.
최익현 유해 환국
이의주
1906년, 을사늑약에 반대하여 의병을 일으켜 항일투쟁을 벌였으나 일본군에 붙잡혀 대마도에서 유배 중 순국한
최익현의 유해가 부산항에 돌아오는 장면이다.
태백산전투
정창섭
의병장 신돌석이 동대성에서 일본군을 물리치는 장면이다.
신돌석은 평민 출신 의병장으로 지도력이 훌륭하고 전술이 뛰어나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많은 전과를 올렸다.
박승환 자결 순국
박기태
1907년, 대한제국 군대 해산에 항거하여 제1대대장 박승환이 자결 순국하는 장면이다.
이는 일제의 항거하는 대한제국 장병들이 일본군과 대대적인 무력항쟁을 벌이는 계기가 되었다.
교정에 선 이승훈
박각순
오산학교교정에서 학생들에게 민족정신을 가르치고 있는 이승훈의 모습이다.
오산학교는 이승훈이 민족정신을 고취하고 인재를 양성하고자 1907년 평북 정주군에 설립한 사립학교이다.
민족을 계몽하고 있는 안창호
장리석
1910년단오날, 평양의 모란봉 을밀대가 보이는 곳에서 계몽강연을 하고 있는 안창호의 모습이다.
안창호는 민족독립운동의 핵심적 요소를 민족교육으로 보아,
여러 개의 학교와 교육단체를 만들었다.
민족대표 독립선언
최대섭
1919년 3월 1일, 서울 태화관에서 거행된 민족대표들의 독림선언식 장면이다.
천도교와 기독교, 불교계 인사들이 종교를 초월하여 조국의 독립을 위해 독립선언식을 거행하였다.
탑골공원 3.1독립만세
문학진
1919년 3월 1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시위 행진에 앞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장면이다.
3.1독립운동은 우리 민족을 하나로 묶어 거족적으로 전개된 최대규모의 독립운동이었다.
봉오동전투
임직순
3.1운동 전후, 독립운동가들은 간도와 연해주를 중심으로 하여 수많은 독립군 부대를 조직하고 일본군과 대일 항전을
했다.
1920년 6월, 홍범도 장군이 이끄는 독립군부대가 만주 봉오동에서 일본군 추격대대를 무찌르는 장면이다.
청산리대첩
손수광
1920년 10월, 김좌진장군이 이끄는 독립군부대가 만주 청산리에서 일본군을 섬멸하는 장면이다.
청산리대첩은 우리 민족이 독립전쟁 과정에서 거둔 가장 큰 승리였으며,
이를 비롯한 다양한 독립투쟁은 나라를 되찾는 원동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