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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양림동 선교사 묘지 그리고 호남신학대학교

국내여행/광주광역시

광주 양림동 선교사 묘지 그리고 호남신학대학교

 

광주 양림동에는 호남신학대학교가 있습니다.

 

믿음, 배움, 섬김 교훈

1955년 미국 남장로교 한국선교회가 수업 연한 3년의 호남성경학원으로 개교, 

1963년 호남신학교로 명칭을 변경하였습니다. 


1971년 학교법인 장로회호남신학 설립을 인가받고 이듬해 장로회호남신학교로 설립, 

1984년 4년제 대학학력 인정학교로 지정되었습니다. 

1989년 호남신학대학으로 개편하고, 1992년 호남신학대학교로 개칭하였습니다. 

 

호남신학대학교 교정에는 아직 붉은 단풍이 한창입니다.

1995년 교육부로부터 대학원, 신학대학원, 목회대학원, 

1996년에는 교회음악대학원, 

1999년에는 대학원 신학 박사과정과 기독교상담대학원 신설을 승인받았습니다. 

1997년에는 교회음악과를 음악학과로 명칭을 바꾸었다. 교훈은 믿음, 배움, 섬김입니다. 

 

바닥에는 누군가 은행잎으로 하트를 그렸습니다.

이곳 호남신학대학교 학생들의 따뜻한 마음이 엿보입니다.

2013년 기준 3개 대학원(일반대학원, 기독교상담대학원, 교회음악대학원), 

3개학과(신학과, 음악학과, 사회복지상담학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부설교육기관으로 평생교육원 등이 있습니다.

 

호남신학대학교 교정에 양림동 선교사 묘지가 있습니다.

그 묘지로 오르는 길은 돌계단으로 이루어져 있어 이곳이 마치 고난의 계단인것처럼 느껴집니다.

 

한국기독교사적 제26호

미국남장로교 선교사 묘원

(1909년 설립 선교사와 그 가족 22명이 안장되다)

 

여기는 이땅에 복음을 전파하다가 돌아가신 미국인 선교사와 그 가족들이 묻힌 묘역입니다.

역사적 산 교육장으로 고이 간직하기위해 우리 모두가 함부로 들어가기를 삼가합시다.

호남신학대학교 총장

 

지금 양림동 선교사 묘원은 공사중입니다.

사업명은 양림동 선교사묘역 조형물 및 연대기 제작 설치공사이며

11월 말에는 공사가 완료되어야 하는데 12월인 지금 아직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양림동 선교사 묘지는 광주에 최초로 기독교를 전파하고 

개화의 새 물결과 일제 치하에서 구국 운동의 계기를 마련했던 23인의 선교사가 묻혀 있는 곳입니다. 

광주광역시 양림동은 

전라남도 최초의 선교사로 광주에서 활동하던 배유지 목사와 클레멘트 오웬의 주된 선교지였습니다. 

배유지 목사는 선교활동의 일환으로 수피아여학교를 설립하였고, 

글레멘크 오웬은 간호사인 부인과 함께 선교 및 의료봉사 활동에 헌신하였습니다. 

 

여기는 고난의 길입니다.

불편하게 놓인 65디딤돌은 한국에서 선교하는 동안 아내와 자녀를 잃고 이곳에 묻힌 45명의 선교사들과

850여명의 호남지방 순교자을의 눈물, 아픔, 고통과 피흘림을 느끼는 발걸음 입니다.

이 불편함이 우리의 고마음을 전하는 마음이기를 바랍니다.

 

프레스톤 길

1911년 "이 콩밭에 학교를 세우면 콩알보다 많은 아이들이 예수님을 믿고 이 나라의 지도자가 됩니다"라는

프레스톤의 기도는 광주 숭일고등학교의 100년 역사와 함께 이루어졌습니다.

그는 1903년 목포에 도착하여 남궁혁을 재개종시키고, 관주숭일학교 교장을 역임하고, 

1913년 부터 순천 선교부를 세웠으며, 그 후손들은 지금도 한국선교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유화례 교장

"이 고아들을 놔두고 저만 미국으로 피난갈 수 없습니다'고 광주에 남았던 수피아 여학교 교장 루트는 

한국전쟁 기간중 동광원 식구들과 함께 화순화학속에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체험하였던 사랑의 성녀입니다.

1928년부터 1995년까지 광주에서 성경과 기독교인의 삶을 가르치다가 

귀국하여 102세로 하나님의 품으로 갔습니다.

 

광주 호남신학교와 양림동 선교사 묘지를 둘러보는 동안 우리나라가 전쟁의 피해로 복구와 잘 살게 된것은 

바로 이러한 분들의 피와 땀이 있었기 대문이라고 생각을 하니 저절로 그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