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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량교회] 부산지역 선교와 복음화의 구심점

워크뷰 2011. 8. 19. 06:00


버스로 초량지구대에 하차합니다















1892년 11월 7일 미 북장로교 선교사 베어드 선교사가
부산 영선현에 거주지를 정하여 5월경에 주택을 건축하고
 옆에 지은 사랑방 예배처소를 개방하며,
 이 때 본격적인 선교활동으로 영선현 교회(초량교회 전신)를 설립하였다.
 초량교회는 6.25 전쟁 기간 중 피난동포를 섬겼으며,
 부산지역 선교와 복음화의 구심점이 되었다.


* 초량마을 위에 있었던 선교사 무덤(1895)

   Henry Davies (1890. 4. 5 소천)

  Sara Mackay (1893. 1. 27 소천)

  Mrs A. Adamson (1895. 11. 27 소천)


* 초량교회를 도운 호주 선교사들(1910년 3월)

 뒤줄 중앙 맥케이 목사 가운데 줄 좌로부터 왕길지   목사부부, 손안로 목사부부

* 주기철 목사 주례 결혼식(1931년)

       * 1926-1931년 주기철 목사 시무

* 6.25 동란 중 전국교회 목사, 장로

통회자복 기도회

* 6.25 전쟁 시 이승만 대통령

초량교회 연설

주기철 목사를 비롯한 김만일 목사, 양성봉 장로 등 경상도 기독교 지도자들의 사진

* 1927년 초량교회 당회록

   불신자와 결혼한 죄로 1년간 칙벌 아래 있던 김말봉 씨를 풀어준다는 내용으로 주기철 당회장의 도장이 선명하다.

* 1926년-1931년까지 주기철 목사 시무


* 초량교회의 전신으로 1890년 손안로 선교사가 호주 선교부의 지원으로 설립한 100여명 수용 크기의 한옥 지붕형 교회.

* 1922년 호주 선교사 소유의 초량동 1005번지(현 위치) 매입 대지 689평 위에 세워졌던 70평 크기의 붉은 벽돌 종탑교회

* 베어드 선교사 부인

  (Mrs. W. M. Baird)

1891년 부산 선교기지를 개설한 베어드 선교사 부부에게 1892년 7월 딸 낸시가 태어났다. 이듬해 여름 세례를 받지만 불행히도 1894년 5월 13일(3세) 뇌척수막염으로 사망하여 부산 외인묘지에 안장되었다.

 

  베어드 선교사 부인은 이국에서 딸을 잃은 슬픔과 경상도지방 선교여행을 떠난 남편의 안전한 여행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애절한 찬송시 찬송가 440장(멀리 멀리 갔더니)을 한국어로 창작하였다. 베어드 선교사 부인이 초창기 초량교회의 어렵던 시절, 눈물로 부르면서 위로받던 찬송가였기에 우리 교인들에게 주는 의미가 남다르다.

 

  찬송곡은 미국 19세기말 복음성가 작가로 무디와 생키의 부흥집회의 음악을 담당하였던 피셔(W. G. Fischer)의 곡이다. 그 후 베어드 여사는 한국 찬송가의 번역과 편집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으며 한국 찬송가 역사에 중요한 인물로 남아 있다.

 * 찬송가 440장 멀리 멀리 갔더니

 1. 멀리 멀리 갔더니 처량하고 곤하며 슬프고 또 외로와 정처 없이 다니니

    예수 예수 내주여 지금 내게 오셔서 떠나가지 마시고 길이 함께 하소서.

 2. 예수 예수 내주여 섭섭하여 울 때에 눈물 씻어 주시고 나를 위로 하소서.

    예수 예수 내주여 지금 내게 오셔서 떠나가지 마시고 길이 함께 하소서.

 3. 다니다가 쉴 때에 쓸쓸한 곳 만나도 홀로 있게 마시고 주여 보호하소서.

    예수 예수 내주여 지금 내게 오셔서 떠나가지 마시고 길이 함께 하소서.


내용출처-->한국기독교회사http://photohs.co.kr/xe/kyungsang_kesan/2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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