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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박진 전쟁기념관

국내여행/경상남도


 박진 전쟁기념관


관람료가 성인기준 600원이었다가, 2014년 9월 12일부터 관람료 무료화되었습니다.

박진전쟁기념관은 경상남도 창녕군 남지읍 월하리의 월상초등학교 폐교 부지에 세웠으며

부지면적 9,781㎡, 건축 총면적 722.13㎡의 지상 1층 건물이며,

2003년 11월 준공하여 2004년 6월 25일 개관하였습니다.


야외전시관에는 탱크(M-47)·장갑차(M557)·견인포와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으며,

실내 기념관 전시코너는 전쟁발발, 남으로 자유를 찾아, 최후의 저지선 낙동강, 남북한 전투장비, 혈전일지, 한 맺힌 38선,

전쟁 그 후라는 주제로 나누어져 있고, 기념관 가운데에 당시 박진전투 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만든 축소모형이 있으며

 다큐멘터리 영화를 상영하는 영상관도 있습니다.

 

박진전쟁기념관으로 들어가는 진입로에는 특이한 건축양식의 예배당이 하나 서 있습니다.

박진전원교회이며 1975년 설립된 예배당이라 박진 전투와는 관련이 없네요.

 

전쟁기념관 상징 조형물

소용돌이치는 근대사의 격변을 헤치고 유유히 달려온 민족의 저력을 모아

새역사의 흐름과 웅비의 비상을 상징한다

 

박진전쟁기념관 정문에서 바라본 모습.


박진 전쟁기념탑

박진 전쟁의 승리를 위하여 장렬히 산화한 순국의 얼을 기리고, 통일의 그 날까지 영원히 화합하고

발전하는 우리 민족의 소망을 담는다.

 

북한군이 낙동강을 넘어 부산으로 진격하려 할 때 경남 창녕 박진 나루터에서 최후의 방어선을 지켜낸 부대가 있습니다.

만약 이 부대의 승리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그 결과가 어떠했을는지 아무도 장담을 못 합니다. 

 

이 전투는 박진 지구전투로 1950년 8월 6일부터 10월 4일까지 벌어졌으며,

미군 제2사단과 제24사단이 북한군 제4사단과의 치열한 전투 끝에 승리함으로써 아군이 낙동강을 건너 반격하게 되었으며 

결국 인천 상륙작전의 성공과 함께 압록강까지 진격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 박진나루전투의 특징은 한국군이 아닌 오로지 미군 2개 사단이 이루어낸 승전보입니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입니다

조국을 위하여 희생하신 호국 영웅들을 다시 한 번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북한군 통조림, 숟가락, 건위산, 담배, 붕대, 공민증, 백고약, 연필, 다이아졸 알약, 화폐.


망원렌즈, 카메라, 필름, 수경, 빨대, 나침반, 고무 물주머니.


 

모포, 방수낭, 자루식 배낭.


병적 증명서, 통행증, 중공군 심리전 발간물, 미군을 상대로 한 심리전 전단, 미군 휴가 명령서,

한국 민사 원조 사령부 표지, 국제 연합유격군 공수훈련과정 수료증.




82m 박격포, 60m 박격포.


12.7m 고사포.



영국군 탄입대와 수통, 장교 계급장, 사병 계급장. 철모.


미군 수통, 나침반 케이스, 탄입대, 철모.

 

전쟁의 기억 속에 살다 간 참전용사.

미 해병 5연대 소속으로 낙동강 방어선 전투에 참전했던 러스터(일명 노성도) 씨는 당시 치열했던  

창녕 박진지구전투에서 한쪽 팔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 있어 큰 아픔을 맛보게 했던 6.25전쟁의 기억을 잊지 못해 한국을 게속 방문해 왔으며,

한국을 제2의 고향으로 여겨 자신의 주검을 한국 땅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기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지난 2002년말 한국 방문중에 사망하였으며 현재 워싱턴 국립묘지에 안자되어 있습니다.


당시 박진전투 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만든 축소모형


그리고 지금 우체국에 가시면 6월 호국영웅 기념우표가 발매되었습니다.

저도 기념으로 한 세트를 구매하였답니다.

박진전쟁기념관을 둘러보면서 6월에 호국정신을 더욱 가슴에 담습니다.

 

박진전쟁기념관
전화번호 : 055-530-1511
경남 창녕군 남지읍 월하리 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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