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경상북도

상주가 볼만한 곳 문화유적지 상주 양진당

워크뷰 2017. 7. 29. 06:00

상주 여행에서 가보아야 할 문화유적지 양진당



양진당은 풍양조(豊壤趙) 가문의 검간(黔澗)공 조정(趙靖,1555∼1636)종택이며 상주의 대표적인 고택 문화재 중 하나이며 보물 제1568호 입니다.

보물로 지정된 이유는 조선 시대 중기 건축물의 특징과 지역적 특성을 반영한 건축 기술과 역사의

변천 과정 등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그만큼 학술 가치가 남다르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며,


1975년도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정되었다가 2008년 국가 지정 문화재인 보물 제1568호로 승격되었습니다.

검간(黔澗)공 조정(趙靖,1555∼1636)이 이 집을 지었는데 1626년(인조 4)에 지은 사실을 기록한 상량문이 발견되었으며,

1807년(순조 7)에 수리하였다는 묵서명(墨書銘)이 나왔습니다.

 

검간(黔澗) 조정(趙靖 : 1555~1636)은 원래 문신이었으나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상주에서

개인재산을 털어 의병을 일으키고 스스로 의병장이 되어 활동하셨습니다.

특히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부터 6년여간 전쟁의 상황과 지역 의병들의 움직임,

관리와 백성들의 동향 등을 사실적으로 기록했는데 이 문헌은 '조선 임진란 기록'으로 명명되었고

임진왜란 연구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자료가 되었으며 보물 제1003호로 지정되었으며 상주박물관에 기증되었습니다.



앞서 포스팅 하였던 오작당이 있는데요 오작당이 원래는 이 자리에 있었답니다.

1601년에 살림집으로 지은 것이었는데 멀지 않은 낙동면 선상서로 1975번지 자리로 이전하고,

1626년에 지금의 종가(宗家) 자리에 제사와 후손들의 학문 연구와 독서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양진당을 건립하셨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지금은 풍양조씨 연수원으로 활용하며 교육활동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4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양진당은 당시에는 민간인이 지을 수 있는 가장 큰 규모인 99칸짜리 저택이었습니다.

그러나 홍수로 인한 유실 등으로 지금은 40칸 정도만 남았다고 합니다.

 

본채에는 일중(一中) 김충현(金忠顯) 선생이 쓴 '양진당'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양진당의 대지는 약간 경사져 있어서 건물을 땅에서 약 1m 정도 높여서 지은 다락집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이런 구조는 남방식 가옥의 특징이라고 합니다. 뜨거운 여름 지열의 영향을 덜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며,


본채 아래에 있는 돌들의 조합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이것은 고래라고 부르는 난방장치인데요

아궁이에서 불을 때면 고래로 지나가고 고래를 통과하는 열기는 온돌을 데워 방이 따뜻하여진답니다.

조상의 건축기술이 돋보이는 난방장치랍니다.



그리고 또 특이한 점을 발견하였어요

그것은 전면 기둥 6개인데요

마루 아래로는 네모기둥이고, 마루 윗부분은 두리기둥으로 다듬어 원주형으로 만들었답니다.

 

본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계단을 올라야 하는데 이렇게 고상식 구조로 지은 것은 지척에 있는 낙동강의 범람에 대비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계단을 올라서서 내려다 보니 꽤 높아 보입니다.


계단을 올라가니 퇴칸이 아주 멋지게 보입니다.

이런 멋진 퇴칸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모습이네요.



지금은 문이 달려 방처럼 보이지만 대청마루였던 장소로 들어가 보니 칠판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많은 학생교육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본채에 있는 방을 들여다보니 현재의 아파트라고 불릴 정도의 구조를 하고 있습니다.

큰 방을 반으로 나뉘어 2개의 방으로 만든 후, 안쪽의 방을 삼등분하여 총 3개의 방으로 만들어 놓은 후

자르지 않았던 방의 1/3를 다시 방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안방마님이 혼자 쓰도 되는 방을 이렇게 4개로 나누어 사용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두 안쪽에 문을 만들어 교류가 가능하도록 하여 놓았네요

한옥에서 이런 구조를 보는 건 쉽지 않은데 오늘 멋진 구경하고 있습니다.

이런 구조는 북방 한옥의 겹집 구조이며 난방에 아주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여닫이 문의 중앙에 세로 기둥이 있는점이 특이합니다.


그리고 종이 매달려 있는데 이 곳 양진당은 일제강점기때 학교로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민족혼을 일깨우기 위한 학교였는데, 일제는 학교를 폐쇄시키고 일본인학교로 학생을 보내게 하였죠

임란시절에 의병으로 활동하신 조상의 뚯을 이어받아 일제강점기에는 민족학교로 학생을 가르친곳입니다.

근대에 와서는 농촌계몽운동에 앞장서는 4H구락부 종으로 활용 되었네요.


여기 튀어 나온 나무는 집을 지으면서 일부러 만든것인데 주택의 튀틀어짐을 방지한다고 합니다.

고택의 각 부분마다 나와 있습니다.


상주 양진당을 둘러보며 이곳을 관리하는 후손의 정성이 너무나 보기에 좋았습니다.

지극 정성으로 양진당을 유지보수하며 방문객에게 일일이 고택을 설명하는 열정적인 모습에 감탄하였습니다.


여러분도 상주여행을 계획하고 계시다면 상주 양진당에 들려 민간주택으로서 그때당시 가장 큰 규모인 99칸 짜리 한옥을 한번 

방문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비록 지금은 40여칸 정도 남아 있는 모습이지만 'ㅁ'자형 가옥을 보고 나시면 초기의 한옥모습이 상상되실것입니다.

상주여행은 여러모로 배울점이 많은 여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