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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호남미술아카이브 의재, 산이되다

워크뷰 2019. 7. 22. 17:07

2019 호남미술아카이브 

의재,  산이되다

연진회로 이어진 의재 정신과 예술

 

전통 위에 꽃 핀 호남 남종화,

변화와 계승을 생각하다.

광주-전남지역은 소치 하련의 문림산방에서 이어진 유서 깊은 남종화의 전통이 오래도록 남아 있는 곳이다.

 

의재 허백전이 1930년대 광주에 안착함으로써 70년대 말까지 허백련과 동시대를 공유한 시민들은 자연스레

전통 수쿡에 대한 관심과 열기가 뜨거웠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출발한 서화동호모임 <연징회>는 사승관계로 재 결성된 후기 연진회에 이르기 까지

허백련과 함께 남종화의 정신과 예술을 계승한 단체로써 광주화단의 큰 축이었음은 알려진 바 있다.

 

그런데 7,80년대까지 지역화단에 미친 연진회의 조명에도 불구하고

당시 연진회를 거쳐 간 작가들 중 소수 몇 명을 제외한 대부분이 자료와 활동기록,

대표ㅗ작 등이 유실되거나 적극적인 수집정리가 되지 않고 있다.

 

'예향 광주/의 견인차였던 남도 한국화단의 자료가 지역 서양화단에 비해

크게 미비한 상태임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안내문 내용)

 

의재, 실천적 삶을 산 예술가

의재 허백련(1891~1977)은 전남 진도 출신으로,

미산 허형으로부터 남종화의 기본 화법을 습득하고 무정 정만조로부터 한학을 배움으로써 

문인화가로서의 역량을 키웠다.

 

청년기의 일본유학은 화가로서 매진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으며,

우국 청년들과의 교분으로 민족주의적 자각이 깊어졌다.

 

귁국 후 전국적인 작가로 조명 받으면서 중앙화단과 적극적인 교류를 펼쳐 갔지만,

이론 남화의 영향 아래 형성되어 간 신화풍의 조류에 반발하여 전통 남종화 정신의 계승과 확산을 모색했다.

 

자신의 뜻에 부응하는 서화동호모임 <연진회>를 광주에서 창립(1938)하면서

남종화의 부흥만이 전통적 회화의 현대적 전승임을 확고히 했다.

 

장잔흥 입석대연운

또한 민족혼을 일깨우는 '홍익인가' 사상과 천, 지, 인 사랑의 '삼애사상' 을 중심으로

'광주농업고등기술학교'를 설립하여 30여 년간 농촌지도자를 양성했다.

 

허백련은 '예술을 위한 예술'이 아닌 현실의 삶 속데 뛰어들어 민족 자강을 꼬한실천적 철학자이자

교육자이며, 남종화맥의 마지막 거목이다(안내문)

 

춘설헌은 화가와 문인들의 왕래가 빈번했던 인문학의 요람으로,

차와 독서와 그림으로 정신을 수양해 간 허백련의 아취가 흠뻑 배인 공간이다.

 

1970년대, 동양의 신비를 찾아 루마니아 게오르규가 방문하기도 했으며,

세계의 젊은이들이 동양미술철학을 연구하던 중 이곳을 찾아오기도 했다.

 

자주 이곳을 찾은 인사들은 변관식, 자운 김철수, 노산 이은상, 오지호, 해인사 지주 뵈범술 등을 비롯

종교계, 정치계, 경제계 등 다양한 층이었으며, 전국 각처에서 찾아왔다.

 

허백련은 그만큼 경계가 없이 소통할 수 있는 넓은 학식과 인품을 지녔음을 유추할 수 있다.

허백련에게 직접 그림지도를 받기 위해 찾아 온 제자들은 이곳에 머무르면서 채본과 방작을 기본으로 공부하고,

특별한 날은 합작을 해서 작품을 서로 나누기도 했다.

 

"내게는 날카롭고 딱딱한 골필보다는 흠뻑한 중묵이 

마음에 들거든, 이미 무등산에 사니까 필법도 무등산 같이

두리뭉실하게 달라진 것인지도 몰라"

의재 선생 인터부 중에서

 

2019 호남미술아카이브 의재,  산이되다

광주시립미술관

2019년 7월 10일 ~ 10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