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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광주박물관,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년' 기념전

워크뷰 2019. 9. 28. 06:02

국립 광주박물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년' 기념전

 


국립 광주박물관에서는 9월 23일부터 10월 27일까지 '대한민국, 역사를 바꾼 10장면'의 네 번째 전시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년을 기념해 열리며

 '6·25전쟁'과 '4·19 혁명'에 관한 전시입니다.


먼저 6·25를 주제로 한 코너에 가면 전쟁의 발발에서부터 정전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는 자료와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 남침

북한군 남침 기사 경향신문 1950년 6월 26일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소장

 

폐허가 된 서울 1950. 11. 1.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제공

전쟁이 일어난 지 5개월 만에 서울은 폐허가 되어 버렸다.

 

힘차게 싸우라

우리는 단군성단의 피를 받은 단일민족 외다.

무운장구 태극기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소장

이 태극기는 1949년 10월 15일 문교부에서 공포한 국기 제작법의 도안과 유사하다.

6.25 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출정할 당시 조국 수호를 맹세하며 서명한 태극기이다.

태극기 우측에는 '무인으로서 운수가 길고 오래가기를 바란다는'뜻의 무운장구가 적혀있다.

깃발에 남겨진 내용을 통해 용사들의 의지와 기상을 엿볼 수 있다.

  

1950년 9월 15일 인천 상륙작전, 서울 수복

인천에 상륙하는 미군들 

 

1951년 1월 4일 중국군 개입, 1.4 후퇴

남쪽으로 향하는 피난 행렬

 

쇠문을 잡으려고 팔을 뻗었다가 

바닷물에 곤두박질하는 피란민도 있었다.

 

전쟁 속에서 피는 의망, 어린이 피난민 속의 네 소년 1921. 4.29. 

도순 국민학교 4학년 원두현 그림 1950년대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소장

정전협정 제2권 지도

1953. 7.27. 남북 정전협정 체결

 

전쟁이 낳은 아픔 전쟁기념관 형제의 상 전쟁기념관에는 6,25 전쟁 당시 남한의 국군 소위로 참전한 형 '박규철'과 북한의 조선인민군 하전사로 참전했던 동생 '박용철'이 원주 치악 고개 전투에서 극적으로 만난 실화를 소재로 한 청동 조각상이 있다.

 

영화-태극기 휘날리며

형제의 상을 모티브로 전쟁조차 삼킬 수 없었던 두 형제 이야기 다룬 영화다. 이념도 사상도 없이 오직 생존을 위해 전장에 나서 스스로 강해져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두 형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6,25 전쟁의 원인과 영향

남한에서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자, 각각의 정부 수립 후 38선을 중심으로 국지적으로 빈번하게 충돌하던 남북은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남침하면서 전면전에 돌입한다. 국제연합군과 중국군의 참전 등 공방을 펼치던 남북은 1952년 7월 27일 휴전협정을 맺고 37개월의 전쟁에 마침표를 찍는다.

이 전쟁으로 세계는 동, 서간 이념 경쟁이 가속화되었으며, 북한은 김일성 유일 체제가 공고화 되었고, 남한 역시 이승만 독재 체계가 강화되었다. 같은 해 북한 역시 9월 9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선포하면서 분단이 고착화된다. 한반도 전체를 공산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소련과 중국의 도움을 받아 1950년 6월 25일 전쟁을 일으켰다.

 


그다음 4·19 혁명 코너에서는 1960년 3·15 부정선거에 대해 전국 최초로 저항한 광주 의거를 비롯해 4·19 혁명에 관한 이해가 쉽도록 전시되어 있습니다.

민주국가의 시작! 4,19 혁명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부터 1960년 4,19 혁명까지 12년은 이승만 정권기에 해당된다. 1960년 3월 15일 정, 부통형 선거가 최소의 형식적 절차마저 무시하는 부정선거로 치러지자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격화된다. 4,19 혁명은 단순히 부정선거에 대한 반발이라기보다 그동안 쌍여온 이승만 독재체제에 대한 총제적인 불만의 표출이었다. 결국 4월 28일 이승만의 퇴진으로 이승만 정권은 막을 내린다.


3.15 선거 전 상황 동아일보 기사 1960. 3.12~3.14 

'헌법위원 5명을 임명, 선거 직후에 소집', '살벌한 공기에 싸인 전날', '부정선거 시정을 요구.''일찍이 없었던 공포 분위기' 등의 기사가 있다.

 

정권타도를 향한 외침, 소년 그리고 분노, 광주에서의 움직임.

민주주의 혁명의 승리

이승만 하야에 환호하는 사람들 1960.4. 26.

3,15 의거 기념사업회 제공

 

4,19 혁명 1주년 추도식 전단, 1961. 4. 19.

 

4.19 혁명의 기록

 

독재와 무능에 항거하다.

4.19혁명 서울대 문리대 학생 선언문

 

끝나지 않은 울림

 

오빠와 언니는 왜 총에 맞았나요

당시 서울 수송 국민학교 4학년 강영희 어린이

 

광주에는 4.19로를 따라 달리는 419 버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