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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신기독병원과 매견시목사 [부산진교회]

워크뷰 2011. 4. 4. 06:11


정공단의 우측으로 기념비가 하나 있습니다









매견시목사 기념비입니다

 매견시목사 그는 누구인가?

'병든자여 내게로 오라'
한국과 나환자들을 사랑으로 품은 '매견시선교사'
매견시(James Noble Mackenzie, 1865~1956)는 스코틀랜드의 유 섬(the Isle Ewe)에서 태어났다. 그는 1882년 무디 부흥집회에서 목회자의 소명을 갖게 되었고,
1891년 존 모트의 연설을 듣고 나서 학생자원자(Student volunteer)로 서원했고,
1894년 12월 7일 빅토리아 장로교회의 뉴헤브리데스 선교사로 안수를 받고
선교지에서 15년을 섬겼다. 그의 아내는 1908년에 흑수열병(Black-water fever)으로 선교지에서 사망했고 이듬해 자신도 질병으로 물러났으나.이듬해 다시 한국으로 들어 왔다


그는 1912년 5월부터 부산의 감만동에 있는 나환자요양소 상애원의 원장을 맡게 되었다.
상애원은 원래 미북장로회가 호주장로회가 함께 운영했으나
1916년부터는 호주장로회가 완전히 단독으로 운영을 하였다.
나환자들은 한국사회에서 가장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들이었다.
나병은 대중들에게 '천형'(天刑)으로 알려졌고 치료도 불가능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매견시 목사는 그 사역을 자신의 소명으로 받아들였다.
1912년에 상애원에는 54명의 환자가 있었으나 1916년에 1백50명, 1926년에 4백50명,
그가 은퇴할 때인 1937년에는 6백명으로 증가했다.
부산 상애원은 1928년까지 4천2백60명의 환자들을 수용하고 치료했다.
그러나 입소를 원하는 환자들이 점점 늘어갔고 상애원 입구에는 나환자촌이 형성될 정도였다.
매견시 목사는 겨울철에 입원을 원하는 환자를 돌려보내는 것이 가장 괴로운 일이라고 진술했다. 그가 신앙양심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상태가 나쁜 환자들을 선택하여 입소시키는 것이었다.


그는 나병 치료의 성공은 '믿음, 기름, 노동'세 가지가 어우러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1915년에 대풍자유 치료법이 개발되면서 환자들의 사망률은 평균 25%에서 15%이하로
 줄어들었고 1923년에는 2.3%로 줄어들었다. 그는 재감자들이 모든 일을 스스로 하고
체력을 보강하도록 했다. 재감자들은 자신들의 숙소와 교회를 스스로 건축했다.
매견시 목사와 다른 나환자 선교사들은 나병의 전염방지와 환자치료를 위한 해결책을 총독부에 건의했으나 총독부는 1917년 소록도에 수용소를 짓고 비인간적인 강제수용을 하였다.


이미지출처-->이성근블로그
매견시 목사에 대한 지역교회와 주민들, 나환자들의 존경심은 대단히 깊었다.
상애원 식구들은 1930년에 매견시 목사 한국선교 20주년을 맞이하여 화강암 기념비를
부산의 좌천동에 세웠고
, 한국사역 25주년에는 수개월 동안 준비한 철제기념문을 세웠다.
그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복음전도자를 파송하면서
 "매견시 기념전도사"라는 호칭을 붙이기도 했다.


매견시 목사는 1938년 2월 18일 부산을 떠났고 이듬해 6월 30일에 선교사직에서 공식 은퇴했다. 1940년 그는 빅토리아 장로교회의 총회장이 되어 아시아인을 차별하는 호주의 이민정책,
백호주의를 반대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매견시 목사의 두 딸 헬렌 맥켄지와 캐서린 매켄지는 부모의 뒤를 이어
1952년 한국에 와서 부산에 일신병원을 세우고
청춘을 한국의 어머니와 신생아들을 위해 바쳤다.
그는 진정 선교의 사람이었고 그 가족은 대를 이어 한국을 사랑했다.

글 출처->정병준 / 호남신대 겸임교수

일신병원과 일대의 부산진교회의 설립자로서 맥켄지(한국명 매견시 1865~1956)목사와 
매혜란(매견시 목사의 큰 딸 1913~2009) 초대원장과 매혜영(1915~2005) 자매의 삶은
 미쳐 몰랐던 호주 선교사들의  헌신과 생명사랑이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2002년 12월 KBS는 '멕켄지가의 사람들'이란 제목으로 크리스마스 특집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여 방송하기도 했습니다.   

일신기독병원은 그들의 부모인 James Noble Mackenzie 매견시 목사와
호주 선교사 메리 켈리 전도사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일신기독병원앞의 부산진시장즈음 으로 보이는 사진입니다

 우측 2시 방향 초가지붕 위 갈미봉과 그 사이 바람고개, 그리고  나무 가지 위 사자봉과 황령산 능선이 여기일 것이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출처-->이성근블로그


매견시 목사와 그의 두 딸입니다. 딸들은 일신기독병원의 설립자이기도 합니다. 
그들이 걸었던 길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솔직히 잘 몰랐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대단히 감동적인 삶이었습니다. 그들은 부산에서 나고(1913)
부산에서 성장(1931년 평양 외국인 고등학교를 졸업 ) 한 다음 호주로 가서
 의사와 간호사로서의 힉위를 받고 약속이라도 한듯 한국으로 돌아 왔습니다.  
일신기독병원의 원래 이름은 일신병원이었고,
 초대원장을 역임한 큰딸 매혜란 선교사가 조산교육과
산부인과의사 수련을 하면서 일신부인병원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출처-->이성근블로그



일신기독병원 홈페이지 가기-->http://www.ilsin.or.kr

우리 주변에 이렇게 우리나라를 위하여 헌신하신 분들이 있다는게
너무나 다행스럽고 수고를 하여 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다음 지도로 보기-->http://dmaps.kr/2cg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