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경상남도

창녕도보여행 2, 영산호국공원

워크뷰 2010. 3. 12. 07:00

총 165만㎡의 면적으로 1973년 도시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전국 3대 국란 호국의 성지이며 3.1독립운동의 발상지이다.


산호국공원은 1973년 도시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1982년 5월 31일 전국 최초로 호국공원으로 재조성되었다. 면적이 165만㎡로 규모는 크지 않지만, 한국의 호국공원 중 손꼽히는 곳이다.  

창녕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 곽재우장군을 비롯한 충의용사들이 왜군을 물리친 전승지이고
3.1독립운동 때는 이 지방 독립만세운동의 중심지였으며,
6.25 동란 때 두 차례에 걸쳐 북괴군의 침공을 격퇴하여 큰 승리를 거두는 등 국난을 극복한 조상들의 호국충절과 자유수호의 높은 정신이 서려있는 곳이다.

3대 국란호국의 성지(聖地)로서, 임진왜란 호국충혼탑, 3·1운동 봉화대 및 기념비, 6·25전쟁 영산지구 전적비가 있다. 공원 입구의 무지개형 다리는 보물 제564호인 만년교(萬年橋)로서, 조선 후기 남부지방의 홍예교(虹霓橋) 구축기술을 보인다고 하여 학술적 가치가 크다.

임진왜란 호국충혼탑 뒤로는 물레방아가 돌고 있다. 영산군이 경상남도 최초로 3·1운동이 일어났던 곳임을 기념하여 이곳에서는 매년 3·1절 기념식이 거행된다. 인근에 연지못, 영산 석빙고, 영산약수, 영축산성, 영산 읍성지, 영산 법화암 다층석탑, 부곡온천 관광특구, 우포늪 생태공원, 화왕산군립공원 등 여러 문화재와 관광지가 있다.

출처 관광공사홈페이지 http://korean.visitkorea.or.kr/kor/ti/everywhere_sightseeings/area_sightseeings/list_505.jsp?category=&areaCode=36%2C15&gotoPage=3&cid=128582&keyword=&stype=&ListType=&cat1=&cat2=

영산
예전엔 어였한 군이었는데
3,1운동이 경남에서 최초로 일어난 곳이었기에
일제는 영산을 창녕에 포함시켜 기를 꺽으려고 하였다고 한다

이 곳에 영산호국공원이 있고
또 그 호국공원으로 가는 만년교(보물 564호)가 있는데
지금은 복원공사를 위하여 허물고 새로 쌓기위해 해체된 상태여서 아쉬웠다. 
영산 만년교는 길이가 13.5m이고 너비가 3m인 무지개 다리로서
조선시대 1780년 석공 백진기가 가설하고
1892년 영산현감 신관조가 석공 김내경을 시켜 다시 지었다고 합니다.


창녕군 영산면은 예로부터 호국의 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임진왜란때 의병을 일으켜 큰 공을 세운 전제장군과 이름없는 병사들의 공을 기리는 임진왜란 호국충혼탑입니다.


호국공원내에는 옜날 영산지역현감이 부임하거나 다녀간 사람들의 공적비,선정비,불망비등 32기가 있다.


가는 곳곳마다 양파의 재배가 한창이다.
창녕의 유명한 약수터 앞 공중화장실
디자인이 좋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함박산 약수터는 신라경덕왕때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어릴적 고동 까먹을때 가게에서 함께 주었던 가시이다
어릴적의 기억이 솟아난다^^


3,1절을 맞이하여 모두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봉화대
평소엔 지붕을 덮고 가동을 하지 않지만
오늘은 3,1절 기념행사로 봉화를 가동하고 있다.

호국공원에는 6,25 당시 영산지구 전적비가 있습니다.
인민군의 총 공세에 맞서 최후의 방어선을 지킨 국군의 노력으로 오늘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겠지요.


전적비에 새겨진 전사 약사문을 보면서 나도 보르게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6,25가 발발한지 어언 60년,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과 둘로 갈라진 우리의 현실이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처음 출발한곳으로 산을 한 바퀴돌아서 내려왔다
순국선열들의 음성이 들리는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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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으로
창녕도보여행을 마칩니다^^
부산의 용호동에서  단팥죽을 마지막으로 함께 하여주신 여러분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