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리학 2

[밀양여행-예림서원] 연산군의 무오사화로 부관참사를 당한 김종직의 예림서원

김종직은 성품이 곧고 바르셔서 연산군에게는 눈에 가시같은 존재였습니다 항상 충의로 나라일을 처리하는 김종직에 눈에 가시같은 존재로 여기는 사람은 연산군외에도 유자광 이극돈 등등이 있었습니다 김종직 먼저 무오사화는 연산군 4년(1496년)에 일어 났는데 이 사건의 발단은 이극돈이었습니다 이극돈은 당시 궁의 역사를 기록하는 서초작성자 김일손의 상관이었고 이 서초에 이극돈의 불미스러운 사생활이 기록되어 있는것을 삭제하려다 발각되어 혼자의 힘으로는 어렵다 하여 김일손의 스승 김종직에게 이를 갈고 있는 유자광을 끌어 당깁니다 먼저 이극돈의 불미스러운 일은 세조(수양대군)의 부인인 정희왕후가 죽었을때 전라감사로 있던 이극돈이 상중임에도 근신하지 않고 장흥의 기생들과 어울려 놀았다는 상소문을 김일손이 서초에 기록하였..

충렬사 전사이가도난"戰死易 假道難"

지난주 청도읍성을 다녀오고나서 부산에도 동래읍성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부산에 살면서도 부산의 읍성을 가지 않는다면 이것 또한 부산시민의 본분이 아닐것 같아서 오늘부터 부산에 있는 읍성을 다녀보기로 하였답니다,그중에 처음으로 동래구 안락동에 위치한 충렬사를 찾았습니다. 충렬사는 1592(선조25)년 임진왜란때 부산 지방에서 왜적과 싸우다 순절한 호국선열들의 위패 89위를 모신 사당으로 선열들의 충효사상을 가꾸어온 호국정신의 요랑지로 성역화 되어있으며 1605년(선조38년) 동래부사 윤 훤이 임진왜란 때 순절한 송상현공을 봉사하기 위하여 동래읍성 남문안(동래 경찰서 자리)에 宋公祠를 건립하고 위패를 모셔 매년 제사를 지낸 것이 오늘날 충렬사의 시초가 되었다. 충렬사 홈페이지 바로가기-->클릭 임진왜란 원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