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교회

[소래교회/기독교유적지/용인여행] 한국 최초의 자생교회

워크뷰 2014. 9. 15. 06:00

한국 최초의 자생교회 소래교회

1883년 황해도 장연군 대구면 송천리에 세워진 교회

1988년 용인 총신대학교 양지캠퍼스 교정에 복원



한국 기독교의 뿌리가 된 황해도 장연군 대구면 송천리에 세워진 소래교회

외국인선교사들이 아닌 한국인들에 의해 자생적으로 세워진 한국 최초의 교회이다

소래교회를 만든 주인공은 평안도 의주 출신의 서상륜과 그의 동생 서경조 형제이다

서상륜(1848~1926)은 인삼장사를 하기 위해 만주를 오고 갔는데 

영국인 선교사 존 로스목사를 만나 기독교를 믿게 되었고 이후 성경번역을 돕게 된다

그의 동생 서경조는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이후 길선주 이기풍목사 등과 함께  한국대표 7인의 목사 중 한사람이 된다 


총신대 양지캠퍼스 입구




소래교회 설립약사와 목적

"본 소래교회는 순수한 우리 조상들에 의하여 이 강산에 세워진 최초의 교회이요 한국교회의 뿌리가 되는 교회이다" 

1. 한국초대교회 선조들의 자주적인 신앙전통을 후세에 계승시키기 위하여,

2. 한국기독교의 문화유산으로 남겨 역사의 산교육 현장이 되게 하기 위하여,

3. 북한교회의 수복과 남북통일을 위한 기도처소가 되게 하기 위하여.





서상륜 서경조 형제

소래교회를 세운 서상륜 서경조 형제는 평안도 의주 출신이다

서상륜은 인삼장사를 하기 위해 만주를 오갔는데 그만 만주에서 장티푸스에 걸려 고열에 시달리며 죽을 고비를 맞게 되고,

친구들의 주선으로 선교부병원에서 헌터(J.M.Hunter)의사의 치료로 열병을 고치게 된다.

이때 중국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메킨타이어 선교사와 로스 선교사로부터 복음을 듣고 감동을 하여 

복음을 받아들이고 로스선교사에게 세례를 받게 되고 이후 한문에 밝았던 서상륜은 로스선교사를 도와 

성경번역 작업을 함께하게 된다


1882년 로스 매킨타이어 선교사와 서상륜을 비롯한 황해도 의주 청년들의 노력으로 

한국 최초의 우리말 성서인 "예수셩교누가복음전셔'가 출판되었다.

1882년 10월 서상륜은 영국성서공회에 의해 한국 교회사상 최초의 권서인으로 임명되어 아직 개신교가 허락되지 않던 때에 

한글로 번역된 성경 100권을 들고 한국으로 돌아 오다 압록강 세관에 발각되어 성경을 빼앗긴다

겨우 10권의 성경을 들고 우여곡절 끝에 빠져나온 서상륜은 동생 서경조와 함께 소래에서 최초의 초가집교회 소래교회를 세우게 된다.

소래교회가 세워진 송천리의 명칭은 순 토박이말로 '솔샘'이었다.

마을에는 소나무가 울창하고 계곡을 흐르는 물은 서해로 흘러 '솔샘'이라 부르던 것이 '솔내'로 변했고, 다시 '소래'가 되었다










최봉석(최권능)목사 순교기념비

만주와 평양시내에서 '예수천당'을 외치며 다니신 목사이다






소래교회는 한국최초의 자생교회이며

이후 한국으로 들어오는 선교사들의 한국어 교육장소로 활용된다.

소래교회는 동학군들의 피신처, 청일전쟁때에는 도피성의 역할을 감당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해방 후 북한에 공산정권이 들어선 후 기독교인들이 남한으로 피난 오면서 소래교회는 문들 닫는 슬픔을 겪게 된다


지금은 1896년 세 번째 16칸으로 증축한 소래교회 원형을 복원하여 기념교회로 보존하고 있으며

뜰앞에는 소래교회 설립자인 '한국기독교선구자 서상륜"기념비 그리고 "한국기독교선구자 이수정"의 기념비도 건립되어 있다.



 


소래교회

경기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제일리 산 41-11

033-332-32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