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경상북도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공원 군번도 기록도 없었던 당시의 학도병들이 펼쳤던 비화

워크뷰 2016. 6. 14. 06:00

장사상륙작전 군번도 기록도 없었던 당시의 학도병들이 펼쳤던 비화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우리나라를 지켜내기 위하여 이름없이 전장의 이슬로 사라져간 그들을 기립니다.


여름이면 해암다 수 많은 해소욕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장사해수욕장이다.

하지만 이곳은 지금으로 부터 60여년전 이땅의 자유를 되찾기 위하여 전장의 이슬로 사라져간 호국영웅들이 있다. 


장사상륙작전 기념탑

여름이면 해마다 수 많은 해수욕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장사해수욕장이다.

하지만 이곳은 지금으로 부터 60여년전 이땅의 자유를 되찾기 위하여 전장의 이슬로 사라져간 호국영웅들이 있다.

그들을 기억하는건 장사상륙작전 기념탑



이 작전은 극비리에 진행되었기에 배도 수장되었고 아무 기록도 남지 않아 역사속으로 사라질뻔 하였으나.

장사리앞 해안을 수색하던 해병대가 무언가를 발견한다, 그것은 바로 장사상륙작전의 베일을 벗어줄 한척의 배였다.

1950년 9월 장사리 근처에서 좌초되었던 배를 1997년 3월 6일 해병대가 발견한 것이다.


역사의 시계를 되돌려 66년 전으로 돌아가보자.

장군님 적들이 낙동강까지 내려왔습니다.

이에 맥아더장군은 인천상륙작전을 생각해낸다.

그리고 적의 눈을 다른곳으로 돌리기 위한 양동작전을 펼치게 되는데, 그 지역을 이곳 영덕 장사리해변으로 정한다.

명령을 미8군에 지시하였으나, 미8군의 병력이 여러가지 사정으로 진행하지 못하자 유격대원을 모집하게 된다.

그러나 1950년 9월 14일 오후 4시 부산항 제 4부두에 도착한 유격대원은 우국충정으로 가득찬 학생들이었다.

이들은 학도병으로서 유서를 쓰고 유품을 남긴 채 군복으로 갈아입은 772명의 학생들이었다.


장사상륙작전의 성공을 바라며 학도병에게 건빵 한 봉지와 미숫가루 세봉지를 지급하고 학도병을 태운 LST문산호는 장사리로 출발한다.

그러나 갑작스런 태풍 케지아의 영향으로 좌초하여 1997년 발견될때까지 수장되고 말았다.

배와함께 수장되어버린 학도병이 있었고, 나머지 학도병은 간신히 육지에 도착하여 적과의 교전이 시작된다.

학도병들은 돌아갈 배도 없고 뒤로는 바다, 앞으로는 북한 정예부대, 그들은 목숨을 걸고 싸웠다.


이들의 상륙작전에 놀란 북한군은 대부분의 병력을 이곳 영덕 장사리로 옮기게 된다.

1950년 9월 14일 북한의 전력이 동해로 옮겨지자, 다음날 1950년 9월 15일 맥아더장군이 이끄는 서해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게 된다.

이 장사상륙작전으로 인하여 한국전쟁의 판도는 크게 바뀌게 되었다.

인천상륙작전 성공 후 1950년 9월 19일 새벽 6시, 해군수송선이 학도병들을 구출하기 위해 장사리로 향했고

학도병들은 배에 승선하려 하였지만 북한군의 강한 공격에 아직 승선하지 못한 60명을 남겨둔체 떠나가 버린다.

장사리에 남은 학도병들은 북한군의 공격과 굶주림에 포로가 되거나, 혹은 그대로 산화하고 말다.

그러나 이 전투는 정식전투로 인정받지 못하고 비사로 묻혀지고 말았다.


그러나 이들의 희생을 하늘은 가만히 두고 보지 않았다.

미국의 한 한국전쟁연구소에서 당시 미군참전용사였던 에반호우의 기록이 발견되었는데,

학도병들이 작전에 참여했다는 사실과 지도, 그들이 승선한 배의 손상지점등의 표기 등

당시 상황에 대한 세밀 기록이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연이어 해병대의 난파선 발견과 인천상륙작전의 중심이었던 맥아더 장군이 전쟁 이후 학도병들에게 썼던 친필서가 공개되면서

당시 학도병들의 활약과 장사상륙작전에서 산화한 그들의 모습에 대해 장사상륙작전은 역사의 재조명을 받게 되었다.

그당시 장사상륙작전은 참여한 학도병 총 772명중 139명 사망, 92명 부상,

나머지는 모두 행방불명이라는 안타까운 결과를 남긴 채 끝이 나고 말았다. 



장사상륙작전 전몰용사 위령탑

1950년 9월 14일 새벽 5시 49분쯤 펼쳐진 장사상륙작전은 인천상륙작전 하루 전 북한군의 눈을 동해로 돌리기 위해 펼친 위장 작전이었다.

당시 학도병 800여명은 부산에서 해군수송함인 LST(양류함) 문산호를 타고 장사해변으로 상륙, 북한 최고 정규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학도병 200여명이 전사했고, 문산호는 장사 앞바다에 침몰해 지금도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다. 

90%가 학생신분으로 호국일념으로 지원입대하였던 대원들은 전후방을 교란시키는 유격대대에 편성되었고, 

이 전투를 수행 중 8일 간이나  식량보급도 없는 극한 상황에서 적 보급로 및 퇴각로 차단 등의 혈전을 치렀다. 

이때 전사한 전우들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찬양하고 호국충정을 기리며, 후세들에게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심어 주고자, 

1980년도부터 매년 8월 14일 이곳에서 위령제를 거행하기 시작했으며, 

많은 사람들의 후원과 특히 경기도 양평 청운사 "석일산" 주지스님의 도움을 받아 1991년 9월 14일 위령탑을 건립 제막하였다.

  



장사상륙작전 전승 기념공원 의의

인천상륙작전의 양동작전으로 시행된 장사상륙작전의 전사적 재평가를 통하여 참전용사들과 남아있는 유족들의 명예를 회복, 

이들의 호국정신을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며 국가를 위해 목숨바친 희생자들을 위령하고 참배할 수 있는 역사인식의 장을 조성하여 

장사상륙작전에참여하여 꽃다운 청춘을 조국에 바친 전몰 학도병들의 충혼을 기리며 희생자들의 구국충정을 가슴에 되새기고 

그분들의 충혼이 후세에 널리 기려지도록 국민 전신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자 한다.


장사상륙작전의 개요


장사상륙작전 참전용사 772명의 명단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공원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다.

호국보훈의달 6월을 맞이하여 그들의 애국정신에 고개숙여 그들을 기린다.

장사상륙작전전승기념공원

경북 영덕군 남정면 장사리 70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