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문학관

하동 여행 박경리문학관

워크뷰 2016. 8. 15. 06:00

하동여행 박경리문학관


박경리: 우리민족은 천상지향적입니다, 우리민족은 영적입니다.

          영적인것은 끝없는 탐구입니다. 즉, 우리민족은 창조적입니다.

           우리민족의 옷은 날립니다 그리고 투명적입니다

          소매끝과 바지도 날리며 심지어 버선코도 하늘을 향해 있습니다.

           심지어 머리에 쓰는 검은 갓도 자세히 보면 투명입니다.

           일본의 한은 원한입니다 피의 복수를 하는 원한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한은 

        어머니가 아기 젖을 먹일때 목젖넘어가는 소리에 행복해 합니다.

        만약 배를 곪게 한다면 그것은 어머니의 한이 됩니다.

        그리고 농부가 메마른 논에 물들어가는 소리가 들릴때 행복합니다

         만약 논에 물이 들어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한이 됩니다.

         이렇게 우리의 한은 미래지향적입니다.


<그림1>

날이 무척 더웠으나 평사리들판에서 최참판댁으로 가는길의 동정호에는 여름의 열기를 식히려는듯 분수가 무더위를 식혀주더군요.


<그림3>

입구 매표소에서 한참을 걸어 올라오면 최참판댁은 우측에 있으며 좌측에 박경리문학관이 있어요.

뙤약볕이라 여성은 양산을 남성은 모자를 꼭 챙기고 와야 할것 같네요.

그리고 이곳은 시원한 음료를 마실수 있는 카페가 여러군데 있으니 무더위 피하기는 쉬워


<그림4>

이곳은 예전엔 전통농업문화전시관이었는데 이번에 박경리문학관으로 리모델링하였답니다.

문학관의 규모로는 지상 1층 연면적 307.4㎡ 이며 기와 한식목구조랍니다.


<그림5>

이곳에 전시된 자료로는 박경리선생이 평소 사용하거나 아끼던 유품 41점과 

각 출판사가 발행한 소설<토지> 전질, 초상화, 영상물,<토지> 속 인물지도 등이 전시되고 있으며,


<그림6>

문학관 마당에는 박경리 선생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마치 지금도 살아서 글을 읽으시는 것처럼 보이네요.

비록 동상이지만 박경리 선생을 이렇게 라도 만날수 있게 되어서 기분은 좋습니다.

비록 2008년에 돌아가셨지만 그의 문학의 향기는 지금도 퍼지고 있는것이 바로 살아있는게 아닐까요?


<그림7>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면 제일 먼저 반기는 박경리선생의 초상화

그리고 진열장 안에는 평소에 쓰시던 돋보기와 안경 그리고 만년필이 전시되어 있는데,

아직까지도 선생은 초상화를 통하여 돋보기와 안경 그리고 만년필을 통하여 집필을 하고 계시는것 같습니다.


<그림8>

하동 악양을 배경으로 한 소설 <토지>가 발간된 책자를 전시하여 놓았으며,

벽면에는 평사리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놓았습니다.


<그림9>

이 그림은 <토지> 인물 형상도인데 좌측 위로부터 강포수, 귀녀, 이상현, 임명희, 봉순, 송관수, 조준구, 오가타지로, 

좌측 중간부터 우관스님, 김훈장, 이용, 임이네, 최치수, 최서희, 김길상, 별당아씨, 김환, 윤씨부인, 이상의,

좌측 아래부터 공월선, 주갑 의 순으로 그려졌어요.

등장인물을 보니 정말 소설 <토지> 속으로 들어온것 같아요.


<그림10>

박경리선생은 1969년 유방암투병 중 <토지> 원고를 현대문학에 연재를 시작하였으며,

 1994년 탈고까지 2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는점에서 놀라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그림11>

내 딸이 병실에 쟈스민 향을 피워 주었다.

옥잠화 몇 송이도 쩍어다 주었다.

열아홉해 전 여름날, 잃어버린 한 쪽 가슴.

상처 달래려 했던가?

향기 높은 옥잠화 붕대 사이에 끼워 두었다.

치료실 시멘트 바닥에 시들은 옥잠화 떨어졌을 때

의사 보기 민망하여 얼굴 붉힌다.

꽃과 향기와 피... 북쪽 손님들 돌아가고

세상은 온통 허무했다... 잃어버린 한 쪽 내 가슴.

-박경리 시집 <우리들의 시간> 중에서-


<그림12>

소설 <토지> 연재분 주부생활 1979


<그림13>

소설 <토지>연재본 마당 창간호 1981년 9월. 인간탐구(1) 박경리-한은 힘이자 희망이지요


<그림14>

박경리선생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는곳이랍니다.

전에 사용하던 재봉틀, 육필원고, 국어사전, 책상, 원피스·자켓 등 의복, 안경, 돋보기, 만년필·볼펜 등 필기구, 

문패, 그림부채, 도자기, 담배·재떨이, 가죽장갑, 그림엽서 등이 전시되어 있어요.


<그림15>

박경리선생은 통영에서 태어나 진주에서 성장하였는데, 진주여고 시절 친구가 하동 악양 조씨고택이 집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자주 조씨고택에 놀러갔었는데 그때 이곳 평사리 들판을 눈여겨 보았을 테지요.

그후, 소설 <토지>탄생의 장소를 찾던중  "만석꾼의 토지란 전라도 땅에나 있고 경상도 안에서 그만큼 광활한 토지를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평사리를 토지의 무대로 정했다"고 하네요


<그림17>

박경리 선생은  정작 죽음의 공포, 암이라는 병에 대한 불안은 가을 회복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죽음에 대한 불안은 세싱의 모든 생명, 나뭇잎을 흔들어 주는 바람까지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지게 만들었으며,

땅에 대하여 땅은 사람뿐만 아니라 날짐승, 들짐승, 모든 생명의 근원이 된다고 하였으며,

생명사상, 생명의 귀함을 주제로< 토지>를 집필하였습니다


<그림18>

박경리: 토지는 생명들의 본질을 인식하는 문서, 토지는 문서다. 문서는 소유의 출발이다

          소유의 출발에서 인간의 비극이 시작된다고 볼수도 있다. 인간의 비극, 개인의 비극, 민족간의 비극, 국가간의 비극, 

           전쟁 이러한 모든것이 소유의 개념에서 오는것이다.

           인긴에게는 토지라는 소유의 문서개념 이게 오늘에 이러러서는 자본주의란 형태로서 이 지구를 파괴로 이끌고 있다.

           그러한 의미로서 <토지>의 이유이고,


<그림19>

바경리: 또 다른 하나는 토지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의 비극, 생명의 숙명, 강물이 흐르듯이...무수한 생명이 흘러가는 슬픔이며 유한이다.

           유한(有限) 우리가 죽기 때문에 살있다는것을 인식한다. 

            영원히 산다면 우리가 시간을 인식못하고 우리가 살아있다는것도 인식을 하지 못할것이다.

           우리가 죽기 때문에 살있다는것을 인식한다. 또, 죽기 때문에 새로운 탄생을 인식한다. 

            이러한 점은 신이 우리에게 형벌을 주었다라고 생각할수 있지만 어떻게 보면 축복이다.

            토지는 비극이면서도 축복이고, 운명이면서도 사랑이고, 삶위 연민이면서도 희망이고, 소망이다.

           우리 한이 소망이다.


지난 5월 4일 하동 최참판댁에서 박경리(1926∼2008) 선생의 타계 8주기를 맞아 ‘박경리문학관’이 문을 열었습니다.

<그림20>

박경리선생이 그렸던 그 광활한 땅의 이야기는 지금도 하동 악양땅에서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이번 주말 소설<토지> 작가 박경리선생을 만나러 하동으로 떠나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동여행 가볼만한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