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도보 여행/역사길

[북문] 투박하고 거친 금정산성북문(北門)

워크뷰 2011. 5. 11. 07:16



투박하고 거친 금정산성북문(北門)



 부산시 금정구의 부산대학과 범어사 뒷산에 있는 금정산성(금정구 금성동)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성이다.
성곽 길이 1만 7천3백37m, 높이 15~3m, 면적 8.213㎢의 방대한 성이다.



4월에 다녀온 길을 오늘에야 올립니다


금정산성 동문을 시작으로 이번에는 지난번과 반대방향인 북문을 향하여 걸어갑니다



전날 미처 보지 못하였던 바닥의 표시가 보입니다


평일에 찾은 금정산성은 조용합니다






오늘은 동문에서 출발하여 북문으로 나아갑니다






약수터가 보입니다






저 멀리 4망루가 보입니다














부산시민의 상수원인 회동수원지입니다






제 4망루에서 바라본 장전동 모습입니다


저 앞에 의상봉이 보입니다




의상봉에서 바라본 북문 가는길











 원효봉

금정산 동쪽 가장 높은 봉우리로 먼저 어둠을 헤치고
동해에 떠오르는 햇빛을 받아 갓 피어난 매화첢 화려한 자태의 빛깔로 수놓아
 "으뜸의 새벽"원효봉이라 불렀다.
금정산성 제4망루 위쪽에 자리잡고 있어 동해 망망대해를 한눈에 바라보는
 전망대 역활을 하고 있는 봉우리다.
김유신 장군이 원효봉에서 낭도들을 훈련시킬대 바위에서 부동자세로 오래 서 있어,
선 채로 소변을 보얐는데 어느 낭도가 그 자리에 소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이 땅달보소나무는 오랜 세월동안 비바람을 이겨내고 그 푸르름을 뽐내고 있어
사람들은 "김유신 솔바위"라고 불렸다고 전해져오고 있으나 현재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북문을 향하여 계속 걸어 갑니다




북문 주변이 어지럽네요

외국인이 많이 보이는데 아마 범어사를 경유하여 북문을 지나가는 모양입니다









 

금정산성 북문
북문은 범어사에서 서편으로 1.6km 고당봉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린 주능선이 원효봉을 향해
다시 치켜 오르는 잘룩한 안부에 자리하고 있다.
금정산성의 4문 가운데 북문이 가장 투박하고 거칠다.
이 성문에는 아치형의 장식도 없고 규모도 다른 성문보다 작다.
성문의 폭은 정면 250cm이고 측면은 350cm이다.
<금정산성부설비>의 기록에는"초?(1808년)에 오한원 무신의 지휘로 기둥과 들보를
100리 밖에서 옮겨오고 벼랑끝에서 험준한 바위를 깍아내어 메고 끌어당기는
사람이 구름처럼 많이 모여 들어서 만사람이 일제히 힘을 쓰니
149일 만에 북문의 초루가 완성되었다" 고 한다  
성문광장 세심정 일대는 원효대사께서 화엄경을 설파한 곳이라[화엄벌]이라 하였으며
 이 곳은 금정산성 방어를 범어사,국청사,해월사 등의 스님을 훈련시켜 승병양성을 한
 승병 훈련장이었다.일제 강점기에는 범어사 3월만세운동(1919년)거사를 위해
기미독립선언서와 독립운동 관계서류를 가지고 경부선 물금역에 내려 금정산 고당봉을 넘어 청련암으로 온 통로도 북문이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상 동문부터 4망루를 거쳐 북문까지 왔습니다


 
투박하고 거친 북문(北門)
금정산성 북문(北門)은 범어사에서 서쪽으로 1.6km, 금정산 주봉인 고당봉의 남쪽 0.9km 지점에 있다. 고당봉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린 주능선이 원효봉을 향해 다시 치켜 오르려는 잘록한 안부에 자리하고 있다.

금정산성 4문 가운데 북문이 가장 투박하고 거칠다. 이 성문에는 아치형의 장식도 없고, 규모도 다른 성문보다 작다. 직사각형의 석문에 누각과 성곽을 마지못해 형식적으로 세운 듯한 느낌마저 준다. 그러나 이 투박한 모습이 오히려 금정산성의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다.

금정산성은 임진란의 혹독한 피해를 입은 동래 부민들이 난리에 대비하기 위하여 쌓은 피란겸 항전성이다. 임진란에 있어서 동래가 차지하는 위치는 다른 고을에 비할 수 없이 중요했다. 나라의 관문이라는 지리적 조건에서 난리의 발생과 함께 적의 첫 상륙지점으로 제일 먼저 전화(戰禍)를 나누고 굳센 항전을 전개한 곳이며,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내었다. 또 난리의 장기화에 따라 적의 교두보로서 오랜 수난이 계속된 곳이기도 하다.'(금정산성 전돈대지 발굴조사개보)

이런 상황에서 축성한 금정산성의 성문이라면 미적(美的) 감각을 동원할 수 있는 겨를이 없었음이 오히려 당연하다. 투박하고 거칠며 모양새가 없는 북문에서 금정산성의 실체를 아주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 북문은 복원 작업도 다른 성문들에 밀려 부산시가 가장 뒤늦게 하였다.
출처-->금정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