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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호 관광지 문화예술공원

워크뷰 2020. 3. 31. 09:25

장성호 관광지 문화예술공원 

장성호 관광지 문화예술공원은 공원안에 갤러리를 만들어 놓았는데요

시, 글, 어록, 그림등의 카테고리를 가지고 거리 갤러리를 조성하였습니다.

 

처음 만난 조형물은 정약용이며 조선후기의 문신이자 실학을 집대성한 학자입니다.

앞면의 시는 정약용이 18세이던 1779년 늑자을에 화순 현감이던 아버지를 뵈려고 가던 길에 장성에 도착하여 지은 시입니다.

전북의 정읍에서 갈재를 넘어 장성에 이르기까지의 풍광을 읊었으며 서울지방보다 따뜻한 남녘의 이후에 대한 이야기가 재미있으며, 평야지대인 장성지방의 풍부한 물산으로 살기에 넉넉함까지 인식한 점이 보이고 있습니다.

 

윤석중 아동문학가의 달 따러 가지 시가 있습니다.

1929년 광주학생사건이 일어나자 양정고보 졸업반으로서 자퇴생의 수기를 중외일보에 발표하고 졸업을 거부한 항일정신은 큰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저서로 윤석중 동요집, 잃어버린 댕기  어깨동무, 날아라 새들아 등이 있습니다.

,이 조형물은 진솔한 꿈을 펴는 이야기가 드라마틱하게 전개되면서 약동적인 생명감이 넘칩니다.

어린이에게 거는 이상은 한결같이 건강하게 뛰고 웃고 무럭무럭 자라 형범하면서도 꿈을 가진 어린이 상을 염원하고 있습니다.

 

박상의(1538~1621)는 조선 중기 청계 박원순의 문인으로 천문지리에 심취하여 세칭 소강절 선생이 다시 태어났다 하였습니다. 앞면의 어록은 1578년 박상의가 율곡 이이 등과 하늘의 장성을 보고 앞으로의 국운울 논하면서 15년 뒤에 왜적이 장차 서울 동문으로 쳐들어 오리라하고 예언을 합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나라를 왜적에게 빼앗겨 민족이 어려움에 어한 시기에 국민계몽과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몸을 바치셨습니다. 앞면의 어록은 안창소 선생이 1932년 상해에서 윤봉길 의거 직후 일제에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된 뒤

옥중심판에서 일본관헌의 질문에 대한 답변입니다.

 

박생광은 한국화가, 진주출신으로 본관은 밀양입니다.

잘샐긴 것을 내 나라에서 찾고 마음은 인도에서 찾고 그것을 그린 나의 어리석은 그림들을

선보이니 바쁘신 그 사이에도 보아주시오면 고맙겠습니다. -그대로 뱍생광 올림-

 

양수아 그림 (강강술래)

양수아의 본명은 회식이며 호는 수아입니다.

전남 보성출신으로 본관은 제주입니다.

강강술래는 정적인 구경꾼들의 모습과 안무자들의 동세가 대비를 이루는 독특한 작품입니다.

 

전망대가 있습니다.

3층이며 계단을 통하여 올라갈 수 있습니다.

 

3층 전망대의 모습입니다.

 

3층 전망대에서 바라 본 공원의 모습입니다.

장성호의 넙은 호수가 가슴을 탁 트이게 합니다.

 

산수유도 피어 있어 보기에 좋습니다.

매화꽃도 활짝 피어 공원을 걷는 느낌을 아주 좋게 합니다.

장성호 문화예술공원에서는 산책하기도 좋고 여러가지 시와 예술작품을 관람할 수 있으니

봄의 산책코스로 좋은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