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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의령 작은미술관 5월 서각전시회 (1)

의령 작은미술관 5월 서각전시회

일상이야기/문화

고, 신영복 성공회의 석좌교수

'사람'으로 읽어도 좋습니다.

'삶'으로 읽어도 좋습니다.

사람의 준말이 삶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은 사람과의 만남입니다.

우리가 일생동안 경영하는 일의 70%가 사람과의 일입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나의 삶과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일입니다.

 

의병

국가의 명령이나 징발을 기다리지 않고 자원 종군하는 민군이다.

의병의 전통은 이미 삼국시대부터 비롯되었으며, 고려, 조선시대를 거쳐 조선 말기에까지 이르렀다.

특히 조선 말기의 의병은 항일 독립군의 모태가 되었다.

학자 박은석은 "의병은 우리 민족의 국수요 국성이다."라고 하면서 "나라는 멸할 수 있어도 의병은 멸할 수 없다."고

말하였다.

즉, 우리 민족은 역대 항중, 항몽, 항청, 항일의 투쟁 속에서 쿠력이 강한 국민성을 갖게되었고,

이 때문에 어는 침략자로부터도 정복당하거나 굴복하여 동화되는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의병의 역사에서 가장 탁월한 활동을 보여 준 것은 임진, 병자 양란의 의병과 한말의 의병이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의병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중앙연구원

 

곽재우

1552년 9월 16일~1617년 5월 14일

조선 중기의 무신, 정치인, 군인으로 임진왜란에서 크게 활약한 의병장이다.

34세 때 문과 대과에 급제하였으나. 임금(선조)을 비판한 답안지로 선조의 명에 의해 합격이 취소되고,

이후 벼슬에 뜻을 버리고, 40세가 되도록 고향에서 학문과 낚시질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1592년(선조 25년)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관군이 왜군에게 전멸당하자,

당시 고향인 경남 의령에서 스스로 의병을 조직, 붉은 비단으로 된 갑옷을 입고 활동하여 천강홍의장군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그의 용맹성에 놀란 왜병들은 곽재우의 이름만 들어도 두려워했다 한다.

여러 번 승리한 공로로 찰방, 조방잗 등을 지낸 뒤 병마절도사를 역임했다.

위키백과, 우리모두의 백과사전

 

벽곡찬송

익힌 곡식을 끊고 솔잎만 막다.

해평 부원군으로 촤찬성 등을 역임한 당시의 주요한 대신인 윤근수 1557~1616는 그가 곡기를 끊은 까닭을

이렇게 짚었다.

"곽재우가 솔잎만 먹는 까닭을 도술을 닦으려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를 아는 사람들은 김덕령이 뛰어난 용력으로도

모함에 빠져 억울하게 죽자 자신도 화를 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서 이것을 핑계로 세상을 도피하려는 것이라고

한다(1608년 8월 13일)."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문헌 강문식 실록을 통해 본 곽재우의 의뱅활동 규장각 33, 2008: 이장희, 곽재우 연구,

한국학술정보, 2005:곽재우 지음, 이재호 옮김 국역 망우선생눔집 집문당 2002.

 

 

 

호접지몽

나비가 된 꿈, 물아일체의 경지

호접지몽은 물아의 구별을 잊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로 장자가 꿈에 나비가 되어 즐기는데,

나비가 장자인지 장자가 나비인지 분간하지 못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약해서 호접몽이라고도 한다.

장자는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로 성은 장 이름은 주이다.

전쟁이 끊이지 않는 불안한 시대를 살았던 그는 인간의 참 자유가 무엇인지를 사유하게 되었고,

그 자유를 추구하는 일에 평생을 바쳤다.

그 결과 물의 시비 선악, 미추, 빈부, 화복 등을 구분짓는 일이 어리석은 일임을 깨닫고, 만물은 결국 하나의 세계로 

귀결된다는 무위자연을 제창하였다.

호접지몽이라는 고사에 이러한 생각이 비유적으로 잘 나타나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호접지몽

 

무아

만물에는 고정 불변하는 실체로서의 나가 없다는 뜻으로 범어로는 아나트만, 팔리어로는 아나딴이다.

무아는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뒤 최초로 설파한 가르침이다.

석가모니 이전의 인도사상에서는 상주하는 유일의 주재자로서 참된 나인 아트만을 주장하였으나,

석가모니는 아트만이 결코 실체적인 나가 아니며, 그러한 나는 없다고 주장하였다.

원래 아집에서 벗어날 것을 촉구했던 무아의 가르침은 뒤에 어떠한 것도 실체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가르침으로,

마침내는 주관과 객관 사이에서 일어나는 대립의 소멸과 해탈로 발전되어 았다.

네이버지식백과 무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염화미소

부처님께서 영취산에서 설법하실 대의 일이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연꽃 한 송이를 들어 모인 사람들에게 보이자 마하가섭이란 제자만이 그 뜻을 깨닫고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이로써 부처님께서 마하가섭에게 불교의 진리를 전했다는 데서 유래한 표현입니다.

염화지중이라고도 하죠

그럼 부처님은 왜 꽃을 들어 보였고, 마하가섭은 무엇을 깨달았을까요?

연꽃은 탁한 연못에서 피어나는데 꽃은 아름답고 깨끗하기 그지 없습니다.

즉 부처님은 혼탁하고 어지러운 세상에서 오히려 인간이 깨달음을 얻어 부처의 경지에 오르게 된다는 진리를

나타내셨고, 마하가섭은 그것을 깨달았던 것이지요.

네이버 지식백과 염화미소 고사성어랑 일촌맺기 2010, 9, 15, 기획집단 MOM, 신동민.

 

군자는 예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덕성을 존중하고,

또 그것을 묻고 공부하는 길로 나아가야만 한다.

그리고 공부를 하는데 있어서는 우주 자연의 넓고 큰 이치도 알아야 하지만 미세란 인간 생활에 부닥뜨리는 

일들까지도 올바로 알도록 하영야 한다.

높고 밝은 하늘의 도를 추구하고 중용의 도를 따라야만 한다.

옛일을 익혀서 지금이나 미래에 일어날 새로운 일들을 이해하도록 하여야 한다.

성실한 태도로 덕의 바탕이 되는 예를 존중하도록 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