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 드라이브 꽃길 강구면 오십천 금호제방 둑길 금계국의 물결

 

 

영역 강구항의 오십천변이 금계국의 노랑물결로 가득합니다.

이번에 다녀온 오십천변은 영덕 환경사업소에서 시작하여 로하스 수산식품 거점단지 입구까지 자여왔는데요

오십천변을 사이에 두고 가득 피어 있는 금계국은 너무나 보기에 좋았습니다.

새천년 기념 마을숲이 조성되어 있는 이 길의 제방은 자전거 전용길로 되어 있어

차량의 통행은 되지 않습니다.

 

자전거 전용도로로 만들어진 둑길은 오십천과 금계국이 있어 더욱 좋은길입니다.

 

자동차도로로 조금 더 가면 영덕군 환경사업소가 나오는데

이 길로 가면 오십천 제방을 따라 멋진 꽃길드라이브를 즐길수 있습니다.

 

금호제방에 마련된 금호습지원은

영덕 하수 종말 처리장에서 처리된 방류수를 자연적인 정화방법으로 재처리한 후 오십천으로 유입시킴으로서

 

오십천의 수질개선을 도모하고 수질 정화식물과 자정작용에 의하여 수질이 정화되어 가는 과정을 체험 할 수 있는

자연학습잗롸 생태공원으로 활용하고자 오십천 자연형 하천 정화사업으로 추진한 것입니다.

 

체유시설이 설치되어 있으며 자전거도로 쉼터 원두막도 있습니다.

 

전망대도 있어 오십천을 관망하기에도 좋습니다.

 

오십천번에 물고기 조형물이 보여 가까이 다가가 보았습니다.

 

이 물고기 조형물은 영덕은어상이며

조형물 안내문을 옮겨 봅니다.

수중군자 또는 청류의 귀공자로 불리는 은어는 은은한 수박향에 감미로운 물고기로 맑고 깨끗한 물에서 서식합니다.

 

조선왕조 오백년  동안 임금님께 진상되었던 오십천 황금은어는 이지걸이란 영덕헌령이 진상하는 일에 태만하였다하여

파직된 일이 야샤로 전해지고 있고, 사람 손에 잡히면 죽는 것은 두렵지 않으나 상놈 입에 들어갈까 걱정 이라고 한

우스개소리가 있으니 과히 진상품 다운 자존심이 아닐수 없다.

이에 군민들의 자긍심을 이 조각상에 담아 영덕 황금은어의 정체성을 이어가고 그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자 한다.

 

옆에는 왜가리가 든어를 맛보기 위하여 대기중입니다.

 

신도청시대 변화하는 영덕

 

이 길을 산책하는 군민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금계국 사이로 꽃양귀비가 피어 있습니다.

 

그리고 조금 일직 피어난 코스모스

 

금계국과 꽃양귀비 그리고코스모스가 피어있는 오십천변 금호제방 드리이브길

자전거도로이면서 산책로 이며 드라이브도 가능한 이런 멋진 길

여러분도 한번 다녀오시는건 어떨까요?

 

영덕 여행 괴시마을  목은 이색기념관

영해면 소재지에서 동북쪽으로 800m쯤 가면 고려 말의 대학자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탄생지이자, 

조선시대 전통가옥들로 둘러싸인 고색창연한 마을 괴시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원래 이름은 호지촌(濠池村)인데, 목은이 중국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와 자신의 고향이 중국의 괴시(槐市)와 비슷하다 하여 

괴시로 부르면서 명칭이 굳어졌다. 아직까지 호지골·호지마을·호지촌으로 부르는 이들도 있다.



1260년(고려 고종 46)경 함창(咸昌)김씨가 처음 터를 잡은 뒤 수안(遂安)김씨, 

영해신씨를 거쳐 1630년(인조 8) 무렵 영양(英陽)남씨가 정착하면서 영양남씨 집성촌이 되었다. 

마을은 주봉인 동쪽의 망월봉(望月峰) 아래 여덟 팔(八)자 형국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전체 100여 호에 3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데, 이 가운데 30여 호가 조선시대 양반가옥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주민 역시 100여 명이 영양남씨다. 


마을 앞에는 동해안의 3대 평야 가운데 하나인 영해평야가 드넓게 펼쳐져 있어, 이 마을이 예부터 세도가들의 터전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마을의 전통가옥들은 조선시대 양반가옥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지금 남아 있는 고택들은 모두 200여 년 전에 지어진 것들로, 'ㅁ'자형 구조이다. 

뜰을 마주보고 서 있는 사랑채 뒤에 안채를 숨겨 안팎을 완전히 분리하는 사대부가의 건축 양식이 잘 나타나 있다. 


30여 호의 가옥 가운데 괴정(槐亭), 영해 구계댁(邱溪宅), 영해 주곡댁(注谷宅), 물소와서당(勿小窩書堂) 등 국가 및 도 문화재자료만도 14점이나 된다.

조선시대 후기 경북 지역 사대부가의 주택 양식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학자들은 물론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다. 

2003년부터는 2년마다 5월에 이곳에서 목은문화제가 열린다.


영해 동녁바다 해돋이

외가댁은 적막한 바닷가 마을에 있는데 풍경은 예로부터 사람들 입에 올랐었네

동녁바다 향하여 돋는 해를 보려 하니 갑자기 슬퍼 두 눈이 먼저 캄캄해 지누나

황량한 마을서 하룻밤 단란하게 묵으면서 젊은 시절 회포를 자세히 못 논해 보았는데

회상컨데 몇 년 새에 선배들은 다 떠났고 아침까지 지저귀더니 어느덧 또 황혼일세

목은시고 권 12


목은이색기념관


만서헌의 한옥이야기

호은 남흥수(1813~1899) 가 만년에 거처하기 위하여 자신의 집(영감댁)옆에 터를 잡아 1893년에 건립하고

1919년에 이건하여 현재까지 이 곳에 위치하고 있다.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팔작지붕이며, 내부는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 온돌방 구조이다.

만서헌의 건물은 옛제목을 구하여 짓는데 번잡하지 않게하고 간소하게 하였으며 

중간에는 마루를. 양쪽에는 방을 두어 서늘하고 따뜻함을 구하였다

그 글방에서 손자들과 함께 거처하면서 그들의 행방과 마음을 단속하고, 

날씨가 맑으면 친구를 초청하여 술을 마시거나 해를 보는곳으로 만년을 여유자적 했던 곳이다.


목은 이색기념관 안에는 이런 포토존을 만들어 놓았다.


문헌서원, 서산서원, 신항서원, 고산서원.


수송영당, 영모영당, 누산영당, 대전영당.

전국에 흩어져 있는 이색 영당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도록 전시하여 놓았다.


장사해수욕장에서는 마침 방생행사를 하고 있는게 보였다.


목은이색기념관

전화번호 : 054-730-7701

경북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 341


영덕여행 가볼만한곳 인량마을

918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인량리마을이 나온다.

영덕에서 영양방향으로 가다보면 좌측에는 원구마을이 우측마을에는 인량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영덕에서 고택이 가득한곳으로 고택을 관광하는 여행자들이 자주 찾는곳이다.


이곳 인량리는 뒷산의 형국이 마치 학이 나래를 펼친것 같다 하여 비개도, 나래골, 익동 등으로 불리었던 마을이다.

그러면 언제부터 인량리로 부르게 되었을까

그것은 이후로 여기서 인자한 사람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하여 인량리가 되었다고 한다.


명당의 입지를 고루 갖추고 있는 인량마을을 보면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마을 앞으로는 넓은 들과 송천이라는 개천이 흐르고 있다.


이 마을에는 종실들이 많은데,『영해부지(寧海府誌)』에 의하면 인량리는 팔성종실(八姓宗室)이 거주하고 있는 곳이었다고 한다. 

지족당과 오봉종택 등의 안동권씨, 충효당과 우계종택 등의 재령이씨 등 8개 성씨의 종실이 있는 마을이 인량리이며, 

마을 인심이 좋고 겸양과 예의가 있어 많은 선비가 배출된 마을이다. 


 이색, 나옹화상도 이곳 인량마을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영덕 갈암종택

조선 숙종때 문신이자 퇴계 이황의 학통을 계승한 성리학자 갈암 이현일의 중택이다.

청송군 진보면 광덕리에 있던 것을 임하댐 건설로 인하여 1992년 길암 태실이 있던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4칸 반의 ㅁ자형 팔작기와집으로, 오른쪽 측면으로 사랑방과 사랑대청이 돌출해 있다.

원래의 건물은 갈암의 8대손 이수악과 9대손 이회발이 항일투쟁의 거접으로 활용했던 곳으로 역사성이 있는 종택이다.

 

영덕 우계종택

이 건물은 조선 선조 때 재령이씨 영해 입항조 이애의 손자인 의령현감 이참의 차암 우계 이시형의 살림집으로

선조 39년 건립된 후 현재까지 400년 가까이 우계파 종가로 보존되고 있다.,

종택은 정침과 별채로 이루어져 있는데 별채는 외부손님을 접대하던 건물이다

정면 5칸, 측면 4칸의 ㅁ자형 건물로 사랑공간이 발달하지 않은 모습의 조선중기적 모습을 가진 양반가옥이다.

건립당시에는 대문채 및 행랑채가 있었다 한다.

 

영덕 충효당 종택

이 가옥은 재령이씨 입항조인 이애가 조선 성종 연간에 건립하였으나, 선조 때 뒤편으로 이건하였다.

가옥의 배치는 ㅁ자 평면의 정침, 사랑채 그리고 두 건물 사이 뒤편에 사당이 자리하고 있다.

충효당은 정침과 독립되어 건립된 사랑채의 당호로서 정자와 같은 모습을 취하고 있으나,

대청삼면에 문을 설치하여 주거건축 용도에 적합하도록 꾸몄다.

그리고튼ㅁ자형 정침은 위편에 여성공간이 자리하고 

전면 좌측부분에 충효당과 연결되는 남성공간이 작은 사랑을 배치하여 당시의 생활규범을 보여준다.


오봉주택

종택은 1450년대에 안동권씨 부정공파 영해 입항조인 오봉 권책이 거주하던 곳으로 200여년이 지난 후 화재로 소실된 것을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배치는 남향으로 솟을삼문과 오봉헌, 사당을 잇는 중심출에서 우측으로 종택이 자리하고 있다.

종택 좌측 높은 축대 위에 벽산정이 위차하고 있다. 사당은 오봉헌 보다 높게 대지를 조성한 후 토석담장을 둘러 공간의 위계성을높였다.

종택은 과거의 평면형과 형태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나 근변에 보수하면서 당시의 흔적은 손상된 상태이나,

영덕 영해지역 안동권씨 가뭉의 정신적 구심정 기능을 합니다.  


영덕 삼벽당

삼벽당은 조선중기의 문신인 하연공파 이중량의 종택이다

이중량은 농암 이현보의 넷째아들로 1528년에 진사시로 급제하여 내외의 여러 관직을 거쳐

선조 3년 강원도 관찰사에 임명되었다.

건물의 평면은 ㅁ자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정창


정침의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5칸 반의 구성이며, 중문칸 좌측 사랑방에 정면 2컨 측면 2캰의 사랑마루가 설치되어 있다,

삼백당은 조선 중기에 건립한 곳으로 알려져오고 있다, 주요 구조부의 치목수법이 정교하여 

특히 대청 배면에 설치된 판문의 중간설주 흔적은 옛 치목수법을 보여 주는 좋은 예라고 볼 수 있다.


영덕 시내버스 정류장 또한 한옥형식으로 만들어져 있어 보기에 좋았다.



영덕펜션 바다숲향기 마을 

영덕여행중 늦은 시간 들린 영덕펜션 바다숲향기 마을 

복층구조 펜션인데 1층에는 티브이를 비롯하여 


냉장고와 주방과 식탁이 있다.



실내계단을 이용하여 2층으로 올라가니

방이 2개이며 

2층에도 화장실이 별도로 있다. 


벽면은 모두 목재로 마감처리되어 편안감을 주고 있다.


수건에 영덕펜션 바다숲향기 마을로고가 인쇄되어 있다.


아침에 눈을 떠 보니  영덕 풍력단지의 바람개비가 돌아가고 있고,


다른 펜션들의 지붕이 내려다 보인다.


어제 하룻밤 편하게 지내었던 영덕펜션 바다숲향기 마을 의 전경이다.

영덕여행에서 이곳에서 하루를 보낼수 있다면 괜찮다.


바다숲향기마을

전화번호 : 054-730-6611

경북 영덕군 영덕읍 창포리 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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