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보성 카페 코클

 

저녁 식사를 마치고 찾아간 벌교 카페 코클

마감시간이 저녁 9시라고 하는데 지금이 9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

테이크 아웃 하기로 하고 내부 모습을 폰으로 급하게 담아보았습니다.

 

벌교 카페 코클의 담장이 조명에 의하여 예쁘게 비치고 있습니다.

 

입구 마당에 양들의 가족이 손님을 반기고 있네요^^

 

마치 정원으로 들어온 듯한 느낌이 아주 좋습니다.

 

출입문에는 크리스마스 양말이 걸려있어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여기 놓고 가실 것 같습니다.

 

실내도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선반에는 도자기들이 진열되어 있는데

아기자기하며 예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줄 타는 산타할아버지도 있어요

 

화장실을 가보았는데

깨끗합니다.

 

방에 마련된 테이블

오붓하게 이야기 나누기 좋을 것 같습니다.

 

아메리카노 테이크아웃이 나왔습니다.

 

컵을 들고 밖으로 나오니 

사진 찍기 좋은 장소가 보이네요

의자에 놓고 한 장 찍어 보았습니다.

보성 벌교에 있는 분위기 좋은 카페 코클

여러분도 벌교로 여행을 오신다면 맛있는 식사 하시고 커피 한잔 드시러 이곳 카페 코클에 한번 들려보세요^^

전남 보성 맛집 생선구이 전문 맛있는 채움

 

전남 보성 벌교에 맛있는 식당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늦은 시간 찾아왔습니다.

영업 마감시간이 저녁 9시까지라고 하는데 음식을 분비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므로

최소한 8시 이전에 마지막 손님을 맞이할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게 앞에 전용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어 주차가 편리하며

야외 테라스도 있어 여름철에는 바깥에서 식사를 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생선구이 전문점 답게 생선구이정식이 9,000원이라고 알리고 있는데요

혼자 올 경우엔 10,000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매장 안은 깔끔하며 손님을 맞이할 수 있는 네이블이 9개 있으며 방에서도 식사를 하실 수 있습니다.

 

생선구이 전문점이라 생선구이 하나를 주문하였는데요

혼자일 경우 다른 식당에서는 손님을 받아주지 않지만 이곳에서는 손님을 받아주기에 고마운 곳입니다.

 

꼬막비빔밥은 2인분부터 주문 가능하며 1인당 13,000원입니다.

내용은 꼬막 비빔밥 + 꼬막전 + 생선구이가 나오네요

 

꽃게장 정식은 1인분 15,000원으로 간장 꽃게장 + 생선구이가 나옵니다.

 

이곳은 다른 식당과는 다르게 생선구이를 주문하면 그 즉시 조리에 들어가기에 음식 나오는 시간이 10분 이상 걸립니다.

그래도 맛있게 나온다면 이 정도 시간은 기다려야죠^^

 

생선구이 1인분을 주문해서 나온 음시입니다.

원래 반찬이 몇가지 더 나온다는데 마감시간이 다 되어 다 내어놓지 못했다고 합니다.

 

맛있는 고등어 구이

반찬이 무려 10가지가 나옵니다.

 

미역국도 나오는데 맛있습니다.

 

생선구이도 알맞게 잘 구워져서 맛있는 저녁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전남 보성에서 맛있는 식사를 하고 싶으시다면 벌교에 있는 맛있는 채움에서 생선구이 한번 드셔 보세요^^

 

광주 양림동 우일선 선교사 사택 

 

광주 양림산에는 게스트 하우스로 호랑가시나무 언덕이 먼저 반깁니다.

 

양림산은 해발 108m 의 낮은 뒷동산으로 조선시대에는 화살대를 납품하는[관죽전]이며 동시에 돌림병에 걸린 어린 

아이들을 버리는 [풍장터]였습니다.

유진 벨은 이 산에 나무를 심고 산자락에 교회와 학교, 병원을 세워 광주에 근대 문화를 전하는 

'생명의 산'으로 바꾸었습니다.

 

이곳은 한국기독교사적 제26호이며

옛 미국남장로교 광주 선교부 부지입니다.

 

양림산 안내지도를 이렇게 멋진 조형작품으로 표현을 하였네요

이 길을 따라 조금만 가면 우일선 선교사 사택이 나옵니다.

 

게스트 하우스 호랑가시나무언덕

 

호랑가시나무 창작소

 

의자도 아주 멋스럽습니다.

 

양림동 호랑가시나무는 감탕나무과에 속하며 변산반도 남쪽의 따뜻한 지방에서만 자랍니다.

나뭇잎은 두껍고 윤이 나며 각이 진 곳에는 가시가 달려 있습니다.

 

꽃은 4, 5월에 피고 9,10월에는 붉은 열매가 익는데 한겨울에도 그 빛이 선명하여 관상용으로 좋습니다.

이 나무의 높이는 6미터이고, 

뿌리 부분의 둘레는 1.2m, 수령은 약 400년 정도이며 이 수종에서는 보기 드물게 큰 나무입니다.

 

마당에 산돌 손양원 목사 순교 시비가 있습니다.

 

단풍나무에 한 마리의 새가 앉아있습니다.

 

그 위로 서양식 건물이 하나 보이는데

이 건물이 바로 우일선 선교사 사택입니다.

 

우일선 선교사 사택

1989년 3월 20일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15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우일선 선교사 사택은 이 양림동 양림산 기슭에 동향으로 세워진 2층 벽돌 건물이며,

이 건물은 미국인 선교사 우일선(미국 이름은 Wilson)이 1920년대에 지었다고 합니다.

광주에 현존하는 서양식 주택 건물로는 가장 오래된 건물입니다.

 

 

우일선 선교사 사택의 평면은 정사각형으로 1층은 거실, 가족실, 다용도실, 부엌, 욕실이 있고, 

2층은 사생활 공간으로 침실' 지하층은 창고와 보일러실을 두었습니다.  


창문은 반원형의 아치로 만들었고 창문 외부는 열개 창, 내부는 오르내리창의 이중창으로 구성하였습니다. 

1층과 2층을 구별하기 위하여 벽돌로 돌림띠를 두었으며,

현재는 사용하지 않고 있으나 한국 근대 건축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광주 양림동 선교사 묘지 그리고 호남신학대학교

 

광주 양림동에는 호남신학대학교가 있습니다.

 

믿음, 배움, 섬김 교훈

1955년 미국 남장로교 한국선교회가 수업 연한 3년의 호남성경학원으로 개교, 

1963년 호남신학교로 명칭을 변경하였습니다. 


1971년 학교법인 장로회호남신학 설립을 인가받고 이듬해 장로회호남신학교로 설립, 

1984년 4년제 대학학력 인정학교로 지정되었습니다. 

1989년 호남신학대학으로 개편하고, 1992년 호남신학대학교로 개칭하였습니다. 

 

호남신학대학교 교정에는 아직 붉은 단풍이 한창입니다.

1995년 교육부로부터 대학원, 신학대학원, 목회대학원, 

1996년에는 교회음악대학원, 

1999년에는 대학원 신학 박사과정과 기독교상담대학원 신설을 승인받았습니다. 

1997년에는 교회음악과를 음악학과로 명칭을 바꾸었다. 교훈은 믿음, 배움, 섬김입니다. 

 

바닥에는 누군가 은행잎으로 하트를 그렸습니다.

이곳 호남신학대학교 학생들의 따뜻한 마음이 엿보입니다.

2013년 기준 3개 대학원(일반대학원, 기독교상담대학원, 교회음악대학원), 

3개학과(신학과, 음악학과, 사회복지상담학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부설교육기관으로 평생교육원 등이 있습니다.

 

호남신학대학교 교정에 양림동 선교사 묘지가 있습니다.

그 묘지로 오르는 길은 돌계단으로 이루어져 있어 이곳이 마치 고난의 계단인것처럼 느껴집니다.

 

한국기독교사적 제26호

미국남장로교 선교사 묘원

(1909년 설립 선교사와 그 가족 22명이 안장되다)

 

여기는 이땅에 복음을 전파하다가 돌아가신 미국인 선교사와 그 가족들이 묻힌 묘역입니다.

역사적 산 교육장으로 고이 간직하기위해 우리 모두가 함부로 들어가기를 삼가합시다.

호남신학대학교 총장

 

지금 양림동 선교사 묘원은 공사중입니다.

사업명은 양림동 선교사묘역 조형물 및 연대기 제작 설치공사이며

11월 말에는 공사가 완료되어야 하는데 12월인 지금 아직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양림동 선교사 묘지는 광주에 최초로 기독교를 전파하고 

개화의 새 물결과 일제 치하에서 구국 운동의 계기를 마련했던 23인의 선교사가 묻혀 있는 곳입니다. 

광주광역시 양림동은 

전라남도 최초의 선교사로 광주에서 활동하던 배유지 목사와 클레멘트 오웬의 주된 선교지였습니다. 

배유지 목사는 선교활동의 일환으로 수피아여학교를 설립하였고, 

글레멘크 오웬은 간호사인 부인과 함께 선교 및 의료봉사 활동에 헌신하였습니다. 

 

여기는 고난의 길입니다.

불편하게 놓인 65디딤돌은 한국에서 선교하는 동안 아내와 자녀를 잃고 이곳에 묻힌 45명의 선교사들과

850여명의 호남지방 순교자을의 눈물, 아픔, 고통과 피흘림을 느끼는 발걸음 입니다.

이 불편함이 우리의 고마음을 전하는 마음이기를 바랍니다.

 

프레스톤 길

1911년 "이 콩밭에 학교를 세우면 콩알보다 많은 아이들이 예수님을 믿고 이 나라의 지도자가 됩니다"라는

프레스톤의 기도는 광주 숭일고등학교의 100년 역사와 함께 이루어졌습니다.

그는 1903년 목포에 도착하여 남궁혁을 재개종시키고, 관주숭일학교 교장을 역임하고, 

1913년 부터 순천 선교부를 세웠으며, 그 후손들은 지금도 한국선교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유화례 교장

"이 고아들을 놔두고 저만 미국으로 피난갈 수 없습니다'고 광주에 남았던 수피아 여학교 교장 루트는 

한국전쟁 기간중 동광원 식구들과 함께 화순화학속에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체험하였던 사랑의 성녀입니다.

1928년부터 1995년까지 광주에서 성경과 기독교인의 삶을 가르치다가 

귀국하여 102세로 하나님의 품으로 갔습니다.

 

광주 호남신학교와 양림동 선교사 묘지를 둘러보는 동안 우리나라가 전쟁의 피해로 복구와 잘 살게 된것은 

바로 이러한 분들의 피와 땀이 있었기 대문이라고 생각을 하니 저절로 그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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