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도보 여행 191

오랫만에 찾은 부산진역(기차역)

도시철도를 타고 부산진역에 내려서 지상으로 올라왔습니다 방송에서 보니 이곳이 미술전시관으로 변신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일부러 찾아왔습니다 삭막하였던 담장은 만화로 채워졌고요 부산과 함부르크미술교류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가 아니고 어제 끝이 났네요 ㅜ.ㅜ 일요일 오후에 찾아간 부산진역 비록 미술작품은 보지 못하였지만 그동안 잠겨 있었던 부산진역이 다시 시민에게 미술전시관으로서 개방되었다는 점이 다행스럽습니다 다음 전시회때 다시 와야겠습니다^^ 부산진역 발자취와 한국철도발자취 안내표지판 아래 손가락을 누르시면 글쓴이에게 큰 힘이 됩니다. 고맙습니다.

비 오는 날의 수채화 같은 금정산 도보여행

비 오는 날의 수채화 같은 금정산 도보여행 지난 토요일 도보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금정산을 다녀왔는데 정말 금정산은 부산시민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 산입니다 비가 오는 가운데에도 수 많은 둘레길을 걷는사람과 고당봉정상을 향해 전진하는 등산객들이 함께 어우러져 즐거운 담소를 나누며 걷는 너무나 좋은 길입니다^^ 오늘의 코스는 노포동역에서 집합하여 남산동 금샘초등학교를 지나 초음동 성지곡수원지로 떠나는 여행입니다 용락암을 지나갑니다 비가 오고있는 중이라서 땅이 질퍽합니다 금샘초등학교를 지나 4망루 방향으로 오르다 보면 웅장한 바위산(무명리지)가 앞에서 턱하니 버티고 있습니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올라오느냐 하듯이..... 그래서 무명리지 암벽등반은 하지 않고(?) ㅎㅎ 그냥 둘레길로 빠졌습니다^^ 무명리지를 뒤로..

금정산둘레길 가족과 산책하기에 좋은 도보여행코스 금곡역에서 화명정수장까지 가는방법

금정산 둘레길을 걸었습니다 도시철도 금곡역에서 출발하여 화명수목원까지 걸어갑니다 모두가 쵸코선물을 하나씩 받았습니다 피그말리온이펙트님께서 쏘시는것이랍니다^^ 극곡역을 출발하여 인재개발원 방향으로 걸어갑니다 울타리가 다른 지역과는 다르게 보기에 좋습니다 인재개발원과 소방학교건물이 보입니다 원효정사 올라가는 길로 들어섭니다 들어서자 마자 바로 우측으로 들어갑니다 데크로 잘 꾸며져 있습니다 조성협진 아파트가 보이는 길입니다 체육공원으로 올라가는 진입로에 접어들었네요 희망이 머무는 가족산책길 안내표시판 이정표에서 금정산정상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이곳은 금곡약수터 체육공원입니다 우와 맛있는 김밥을 장만하시고 오신분이 김밥을 나누어 주십니다 모두 배낭에서 하나씩 내어 놓는군요^^ 앗 테트리스 바위입니다^^ 이런 바위..

대한민국 임시수도 기념거리의 겔러리 벽면의 사진과 바닥의 동판

대한민국 임시수도 기념거리의 겔러리 벽면의 사진과 바닥의 동판 동아대학교 부민캠퍼스의 담벼락을 따라 임시수도 기념거리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1910 부산재판소 1925 경상남도 도청 1950 임시수도 정부청사 1984 부산지방 법원 2008 동아대학교 캠퍼스 부산 구 재판소(1910년대) 임시수도 정부청사(현 동아대학교 박물관) 1995년도 법원 모습(부산지방법원 및 검찰청) 한국전쟁시 국회의사당으로 사용했던 경남도청 무덕전 동아대학교 현판(1946년 11월 1일 개교) 1958년도 부민교차로 거리모습(지금의 동아대학교 부민캠퍼스 앞) 1910년대 초 시가지 전경 대신공원에서 바라본 서구 전경(1964년) 1960년대 구덕운동장 주변 동아대학교 임시 가교사 모습(1964년) 1961년 구덕로 모습(동대신 ..

동아대학교 박물관 부산 임시수도 정부청사

동아대학교 박물관 부산 임시수도 정부청사 동아대학교 박물관을 방문하여 봅니다 이곳은 예전에 부산 임시수도 정부청사였습니다 이 건물은 도청 소재지를 진주에서 부산으로 옮기면서 건립한 경남도청으로, 한국전쟁 당시 임시정부청사로 사용하였다.처음 준공할때는 "-"자 모양의 평면으로 구성하였으나,1960년대 증,개축으로 "ㅁ"자 모양,"日"자 모양으로 바뀌었다.정면 가운데에 현관 포치(porch)가 돌출되어 있고,가운데와 양쪽 끝 부분을 돌출시키고 그 위쪽을 박공지붕으로 구성하는 등 전체적으로 위엄 있는 입면을 갖고 있다.우리나라 근대사의 정치,사회적 변화를 간직한 역사 적인 건물로 구 경상남도지사 관사(지금의 임시수도기념관)와 더불어부산 지역의 대표적인 근대 공공 건축물이다.현재 동아대학교 박물관으로 쓰고 있다..

부산전차 복원전시 동아대학교 부민캠퍼스

동아대학교 부민캠퍼스에는 부산에서 운행되었던 전차가 복원전시되어 있습니다 이 거리를 지나 동아대학교 정문으로 들어 갑니다 부산의 마지막전차 그리고 1952년 찰스턴부두에서 선적중인 애틀랜타전차의 사진 부산전차는 1915년부터 1968년까지 운행되던 노면전차이며 남선전기에서 운영하였기에 남전이라고도 불렸습니다 (1961년 이후에는 한국전력주식회사로 개명됨) 역사테마파크 임을 알리는 안내판 부산시내 총 21.7km를 운행하였던 전차 실내는 오후 3시 부터 4시에 관람을 할수가 있는데 전 점심시간에 왔기에 실내는 창문으로만 볼수 있었습니다 이 전차는 1927년 미국 Georgia Power Cpmpany Cincinnati Car Company에 주문번호 2960으로 제작의뢰한 860~899시리즈증 893호 ..

부산 괴정동 빨래터와 회화나무

지난 번에 발행한 괴정지명의 유래에서 괴정동의 도로변에 위치한 회화나무를 소개하였습니다 오늘은 괴정동에 또 다른 골목안에 위치한 회화나무와 빨래터를 소개하겠습니다. 이 회화나무 역시 당시 사람들의 만만찮은 기개를 전해주고 있는데. 임진왜란 당시 마을사람들이 나무 아래 모여 ‘왜군이 물러가게 해달라’고 빌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밀고로 이런 사실이 알려져 왜군이 이 나무를 베어버리기 위해 마을로 들어왔고요. 이 때 여러 사람이 이를 막고 항의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는데 왜군이 죽은 사람들을 잘린 나무와 함께 그곳에 묻어버렸다고 합니다. 뒷날 잘린 나무에서 여러 개의 가지가 나왔는데 가지수가 죽은 사람들의 숫자와 같아 마을사람들이 놀라워하며 나무 아래 우물물을 떠서 음식을 만들어 제사를 ..

버스정류장이 1910년형 전차모양이네^^

yes24 대한민국 대표 여행지 부산엔 전차가 언제부터 다녔을까? 부산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전차종점이란 표지석이 보이는곳이 있습니다. 영도 남항동 같은 경우엔 버스정류소 이름이 남항동 전차종점이 있는데, 노선은 영도 - 남포동 - 동아대부민캠퍼스 - 구덕운동장 이렇게 달렸던 전차를 오늘은 전차모양버스정류장으로 만나볼수 있습니다! 전차가 처음 운행한 시기는 1910년에 부산진에서 동래온천장이 처음 운행이 되었고 1928년엔 공설운동장이 들어서면서 대신동까지 전차선로가 연장돼 지금의 운동장에 전차종점이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전차는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조금 더 빠르고 편하게 동래 온천장으로 이동할수 있게 하기 위하여 만들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인기를 누리던 전차도 버스로 교통정책이 변경됨에 따라 1968년 5..

부산갈맷길이 이렇게 바뀌었습니다(21개 → 9개 코스)

■ 1코스 (33.6㎞, 10시간) 임랑해수욕장 ~ 칠암 ~ 일광해수욕장 ~ 기장역 ~ 대변항 ~ 해동용궁사 ~ 문탠로드 ■ 2코스 (18.3㎞, 6시간) 문탠로드 ~ 동백섬 ~ 민락교 ~ 광안리 해수욕장 ~ 이기대 ~오륙도 유람선선착장 ■ 3코스 (37.3㎞, 13시간) 오륙도 유람선선착장 ~ 부산진시장 ~ 국제시장 ~ 남항대교 ~ 태종대 유원지 입구 ■ 4코스 (36.3㎞, 13시간) 남항대교 ~ 암남공원 ~ 감천항 ~ 두송반도 ~ 몰운대 ~ 낙동강하구둑 ■ 5코스 (42.1㎞, 13시간) 낙동강하구둑 ~ 명지오션시티 ~ 눌차초등학교 ~ 연대봉 ~ 어음포골 ~ 동선방조제 ~ 정거말 ~ 정거마을 ~ 눌차초등학교 ■ 6코스 (36.2㎞, 11시간) 낙동강하구둑 ~ 삼락강변체육공원 ~ 삼락IC ~ 구포역 ..

[부산지명]괴정의 유래가 된 회화나무

부산시 사하구에는 괴정이란 지명이 있는데 괴정의 유래는 회화나무에서 가져왔다고 합니다 다음 로드뷰로 보기--> http://dmaps.kr/93hb 이 회화나무의 위치는 괴정4거리에서 당리방향으로 조금만 가면 해오름교회 맞은편에 있는데 지금은 쌈지공원 및 보호수로 지정이 되어 있습니다 이 괴목{槐木}은 조선시대 말엽 「다대첨사(多大僉使)의 전설」을 담고 있습니다. 무차별적인 세금에 시달린 백성들이 이 괴목이 있는 팔정자에 모여 세금에 대하여 불평[가렴주구(苛斂誅求)]을 토로하곤 하였는데 첨사는 팔정자를 수리한다는 명목으로 8명까지 희생시키면서 이곳에 자라는 회화나무를 베어버리도록 명령했답니다. 모임을 갖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지요. 그러나 잘려진 회화나무는 죽지 않고 8개의 줄기를 내며 다시 자라났다고..